'창덕궁'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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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68

조선 광해군 다음왕 인조의 삶과 업적 ◆ 조선 광해군 다음왕 인조의 삶과 업적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되세요^^. 조선의 제16대 국왕 인조는 1623년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축출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재위기에는 내외환을 겪었으며, 청나라의 침입을 받아 남한산성에서 항복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러 정책과 업적을 남겼는데요 오늘은 조선 광해군 다음왕 조선 제16대 국왕 인조의 삶과 업적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인조의 출생과 성장 인조는 1595년 11월 27일 (음력 11월 7일) 임진왜란 중에 선조의 다섯째 서자인 정원군과 의정부 좌찬성을 지낸 구사맹의 딸 군부인 구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조선 황해도 해주부 관사에서 태어났다. 인조가 해주에서 태어나게 된 이유는 당시는 임진왜란 난중으로.. 2024. 1. 22.
황제 행차, 조선 순종황제 어차! 세계적으로 희소한 차 ◆ 황제 행차, 조선 순종황제 어차! 세계적으로 희소한 차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되세요^^. 오늘은 황제행차, 흔들임없는 자부심과 품격이 담긴 세계적으로 희소한 차인 순종황제의 어차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서울 경복궁 옆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면 지하1층 로비에 전시된 순종황제 어차를 볼 수 있는데요. 이 어차는 순종황제(1874~1926/재위기간 1907~1910)가 탔던 어차로, 미국의 지엠GM사가 제작한 캐딜락 리무진입니다. 문이 4개인 7인승 31.25마력, 8기통 엔진, 배기량 5,153cc로 연식은 1918년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차체는 철재가 아닌 목재이고 외부는 칠(漆)로 도장하여 진한 밤색입니다. 차문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문장인 황금색 오얏꽃 장식을 붙였고, 내부는 오얏꽃 무늬의 황.. 2024. 1. 8.
90년 만의 창경궁과 종묘 연결 / 왕의 길 궁궐담장길 탐방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영상은 서울 가볼만한 곳으로, 90년 만에 창경궁과 종묘가 연결되었다고 하여, 왕의 길 궁궐담장길을 탐방하고 담은 것입니다. 왕의길 궁궐담장길 탐방 2022. 8. 16.
창경궁과 종묘 90년 만의 연결 / 궁궐담장길 걷기 ◆ 창경궁과 종묘 90년 만의 연결 / 궁궐담장길 걷기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되세요^^ 그제는 창경궁과 종묘가 90년 만에 연결되었다고 하여 새로 복원한 궁궐산책길을 걸어 보았는데, 오늘은 이를 간략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원래 창경궁과 종묘는 담장 사이에 두고 숲으로 이어져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32년 일제가 종묘 관통도로를 만들면서 단절되었습니다. 즉 일제는 풍수지리상 북한산의 주맥이 창경궁에서 종묘로 흐르게 되어 있는 것을 도로의 신설과 확장이라는 미명 아래 끊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번 창경궁 종묘 연결 복원은 율곡로 개설로 섬처럼 분리되었던 종묘를 선조들이 계획했던 공간으로 되돌려, 국가 상징물의 역사적·전통적 가치를 회복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창경궁은 일제강점기 및 해방 후 4.. 2022. 8. 4.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덕홍전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덕홍전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조선 궁궐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덕수궁 덕홍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덕수궁 덕홍전은 함녕전 옆 서쪽에 있는 전각이다. 덕홍전은 덕수궁의 건물 중에서 현대에 세운 시설물을 제외하고 가장 나중에 지었다. 원래 덕홍전 자리에는 한때 명성황후의 빈전과 혼전으로 쓰이던 경효전이 있었다. 그러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덕홍전은 함녕전을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할 때 일반 빈객들을 접견하기 위하여 경효전 자리에 1906년 건립한 후 1911년에 개조하였다. 주로 황제가 외국 사신이나 대신들을 만나던 접견실로 쓰였다. 이 전각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4칸이며 겹처마 팔작지붕의 단층이다. 측면.. 2021. 8. 30.
조선 궁궐 이야기 / 고종의 침전 덕수궁 함녕전 조선 궁궐 이야기 / 고종의 침전 덕수궁 함녕전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조선 궁궐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고종의 침전 덕수궁의 함녕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897년 건립된 함녕전은 고종황제가 일상생활을 하고 잠을 자던 침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04년 함녕전 온돌 수리공사 중 일어난 화재로 함녕전은 물론 덕수궁 내 전각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함녕전이 소실된 이후 고종은 중명전을 집무실 겸 침전으로 사용하였다. 함녕전은 이듬해인 1905년 8월에 중건하였다.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과 정전인 중화전 사이에 있다. 함녕전의 정문은 광명문이다. 덕홍전과는 한 영역에 있다. 함녕전은 1897년 당시 경복궁에 있던 만화당을 옮겨다 지었다. 1985.. 2021. 8. 24.
조선 궁궐 이야기 / 고종의 침전 덕수궁 함녕전 조선 궁궐 이야기 / 고종의 침전 덕수궁 함녕전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조선 궁궐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고종의 침전 덕수궁의 함녕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897년 건립된 함녕전은 고종황제가 일상생활을 하고 잠을 자던 침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04년 함녕전 온돌 수리공사 중 일어난 화재로 함녕전은 물론 덕수궁 내 전각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함녕전이 소실된 이후 고종은 중명전을 집무실 겸 침전으로 사용하였다. 함녕전은 이듬해인 1905년 8월에 중건하였다.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과 정전인 중화전 사이에 있다. 함녕전의 정문은 광명문이다. 덕홍전과는 한 영역에 있다. 함녕전은 1897년 당시 경복궁에 있던 만화당을 옮겨다 지었다. 1985.. 2021. 8. 24.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광명문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광명문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덕수궁의 광명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광명문은 고종의 침전이었던 함녕전의 남쪽 대문(정문)이다. 대한문과 중화전 사이에 있으며, 1897년(건양 2년)에 건립되었다. 건립한 지 불과 7년만인 1904년(광무 8년)에 함녕전 온돌을 수리하다 대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되었고 그해 12월에 다시 지었다.1919년에 고종이 세상을 떠나자 덕수궁은 빈 궁궐이 되었고, 1933년 덕수궁 공원화 계획으로 많은 건물들이 팔리거나 헐렸다. 그러나 광명문은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양 옆 행각이 철거당했다. 그리고 1938년에 일제가 덕수궁에 미술관(석조전 서관)을 개관하면서 건물 자체를 .. 2021. 8. 10.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의 정전 중화전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의 정전 중화전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이다. 중요한 국가 의식을 거행하거나 조회를 열던 곳이다. 조선의 5대 궁궐 정전 중에서 유일하게 20세기에 창건되었으며, 처음부터 조선 왕궁의 정전이 아닌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세운 건물이다. 1897년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였으나, 협소하여 1902년 새로운 정전으로 중화전을 지었다. 본래는 2층으로 된 중층 건물이었으나 1904년 4월 화재로 소실된 후 현재의 단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중화전 앞뜰에 조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의 위치.. 2021. 8. 6.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중화문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중화문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덕궁의 중화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중화문은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의 정문으로 1902년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1904년 덕수궁 대화재로 소실된 후 새로 만들어 세웠으며, 본래 중화문 좌우에 행각이 있었으나 없어지고 동측에 일부만 남아 있다. 중화문은 대한문으로 들어가 일직선상으로 금천교를 건넌 뒤 조원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보인다. 이는 광화문에서 근정문까지 일직선인 경복궁과는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경복궁은 예법에 따라 반듯하게 구획한 반면, 덕수궁은 원래 궁궐이 아닌 곳을 확장하며 지었기 때문이다. 중화문은 조선의 5대 궁궐 정전의 정문 중에서 유일하게 20세기에 창건되.. 2021. 8. 4.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금천교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금천교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덕궁의 금천교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덕수궁의 대한문을 지나 건너게 되는 금천교는 1986년에 발굴 복원한 것이다. 덕수궁을 관통하도록 하여 만든 금천에 놓은 돌다리로 2개의 나란한 홍예교로 되어 있다. 조선의 모든 궁궐은 정전의 문 앞에 명당수가 흐르도록 하는 게 정석이었다. 배산임수의 풍수관에 따라 임금의 공간을 명당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이다. 배산임수란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땅을 말한다. 그리고 명당수가 흐르는 궁궐의 물길을 금천이라고 하였다. 이 금천은 정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임금이 지내는 거룩한 내부공간과 외부의 일상적인 공간을 구별해주는 경계.. 2021. 8. 3.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덕궁의 정문인 대한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한문은 덕수궁의 정문이다. 원래 덕수궁의 정문은 남쪽으로 난 인화문이었는데, 환구단 건립 등으로 덕수궁의 동쪽이 새로운 도심이 되자 동문인 대안문을 정문으로 삼았다. 1904년 덕수궁 화재로 1906년 중화전 등을 재건하면서 대안문을 대한문(大漢門)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70년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33m가량 서쪽으로 물러 앉게 되면서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때 문을 해체하여 옮기지 않고 통째로 덕수궁 쪽으로 밀어 당기는 식으로 옮겼다고 한다. 대한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다포계 우진각지붕으로 겹처마에 단청을 했으며.. 2021. 7. 28.
조선궁궐 이야기 * 창경궁 선인문 조선궁궐 이야기 * 창경궁 선인문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경궁의 선인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선인문은 홍화문에서 이어진 궁 담장의 남쪽 곧 창경궁 동남쪽 담장에 있는 궁문이다. 이 문은 성종 때 처음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광해군 때 재건되지만 1857년(철종 8)에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문은 고종 연간에 재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이 문의 예전 이름은 서린문이며, 동궁의 정문으로 조정의 신하들이 출입하였다. 또한 세자가 궁 밖을 드나들 때, 특히 성균관 입학할 때 이용하였다. 선인문은 1층 목조 건물이다. 정면 2칸, 측면 2칸, 총 4칸이며 공포를 두지 않은 민도리 양식이다... 2021. 7. 4.
조선 궁궐 이야기 * 창경궁 관천대(觀天臺) 조선 궁궐 이야기 * 창경궁 관천대(觀天臺)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경궁의 관천대(觀天臺)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창경궁의 관천대는 문정전 앞쪽에 있으며, 천문을 관측하던 소간의를 설치했던 돌로 만든 대(臺)이다. 조선 후기 숙종 때 평지에 만들어졌다. 보물 제851호이다. 관천대는 화강암 석대 위에 돌난간이 둘려 있고, 돌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대의 한 가운데에는 다시 돌대가 놓여 있어, 그 위에 소간의를 설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서운관지 書雲觀志〉에 의하면 창경궁 관천대는 1688년(숙종 14)에 축조된 것으로 높이는 2.2m이고, 크기는 가로 2.4m, 세로 2.3m 정도의 화강석 축조물로 그 위에 소간.. 2021. 7. 1.
조선궁궐 이야기 * 관덕정 조선궁궐 이야기 * 관덕정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경궁의 관덕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온실 오른쪽 야산 숲에 정자가 하나 보이는데 이곳이 관덕정이다. 이곳은 원래 누에를 치던 곳이었다. 1642년(인조 20)에 활쏘기를 위한 사정(射亭)을 지어 취미정(翠微亭)이라 불렀으며, 1664년(현종 5)에 이름이 관덕정으로 바뀌었다. 관덕정 아래에는 군사들이 활쏘기나 말타기 연습을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창경궁이 창경원이 되면서 많은 전각들이 헐렸음에도, 관덕정은 살아남았다. 다만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이후 1980년대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관덕정은 1층 목조 건물이다. 네모난 돌 기둥을 .. 2021. 6. 30.
조선궁궐 이야기 * 대온실 조선궁궐 이야기 * 대온실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경궁의 대온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창경궁의 춘당지 바로 북쪽에 있는 대온실은 1909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대온실은 일제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을 창덕궁에 유폐시킨 뒤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창덕궁에 인접한 창경궁 내에 동물원과 함께 지었다. 대온실은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하여 완성하였으며,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유리로 둘러싼 서양식 온실이다. 그때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19세기 근대건축의 새로운 유형인 철과 유리가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건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 11월.. 2021. 6. 29.
조선궁궐 이야기 * 팔각 칠층석탑 조선궁궐 이야기 * 팔각 칠층석탑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경궁의 팔각 칠층석탑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창경궁 안에 있는 이 팔각 칠층석탑은 라마식 석탑으로, 기존의 석탑과는 양식을 달리하는 탑이다. 높이 6.5m 규모인 이 탑은 현재 창경궁 내 대온실(식물원) 앞 연못 춘당지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 춘당지를 따라 왼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팔각 칠층석탑이 보인다. 1992년 1월 15일에 보물 제1119호로 지정되었고, 창경궁 관리소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이 탑은 조선 성종 원년 중국 명나라(1470년) 때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일제 강점기인 1911년에 창경궁에 이왕가 박물관을 건립할 때 만주에서 가지고 온 상인으.. 2021. 6. 28.
조선궁궐 이야기 * 창경궁 춘당지 조선궁궐 이야기 * 창경궁 춘당지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경궁의 춘당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춘당지는 창경궁의 호리병 모양의 연못이다. 아래쪽 큰 연못과 위쪽의 작은 연못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연못 이름은 근처에 있던 춘당대에서 따왔다. 그렇지만 이 두 연못이 전부 춘당지는 아니었다. 아래쪽의 큰 연못은 논을 일컫는 내농포로 국왕이 궁궐 안에서 직접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곳이었다. 즉 왕이 친히 모를 심고 추수를 통해 신하들에게 나눠주며 백성들의 생활을 몸소 체험했던 곳이다. 아래쪽 내농포는 원래는 조그마했으나 1909년 일본인들에 의해 이곳이 연못으로 개조되고, 기존에 있던 북쪽 연못과 합쳐 이름을 춘당.. 2021. 6. 27.
조선궁궐 이야기 * 성종대왕 태실과 성종대왕 태실비 조선궁궐 이야기 * 성종대왕 태실과 성종대왕 태실비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경궁의 성종대왕 태실과 성종대왕 태실비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창경궁의 양화당, 석복헌과 영춘헌 뒤편 언덕 위에 있는 풍기대에서 춘당지로 가다 보면 성종태실비라는 팻말이 나오고 이를 따라 조금 가면 성종대왕 태실과 태실비가 보인다. 조선 왕실에는 왕자나 공주 등 왕손이 태어나면 명당지를 찾아 태항아리를 묻어 보존하였다. 태실은 태항아리를 묻어 기념했던 조형물이다. 태봉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에 왕비가 출산하면 7일이 지나 안태사가 태를 여러 단계 깨끗한 물로 씻어 백자 항아리(태 항아리)에 넣어 태실에 안장하였다. 자른 태는 태호라고 하는 항아리.. 2021. 6. 26.
조선궁궐 이야기 * 창경궁 풍기대 조선궁궐 이야기 * 창경궁 풍기대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경궁의 풍기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풍기대는 창경궁의 영춘헌과 집복헌 뒤 언덕 위에 세워져 있으며,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측정하는 풍기(깃발)를 세웠던 석대(받침대)이다. 풍기는 풍신기(風信旗)라고도 한다. 즉 풍기대와 풍기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는 기상 관측기구이다. 이 풍기대는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높이 228㎝로 아래에 상을 조각한 대를 놓고 그 위에 구름무늬를 양각한 8각 기둥을 세운 모양이다. 8각 기둥 맨 위의 중앙에는 깃대 꽂는 구멍이 있고, 그 아래 기둥 옆으로 배수 구멍이 뚫려 있다. 깃대의 길이는 확실하지 않으며 깃대 끝에 좁고 긴 깃발을.. 2021.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