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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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76

[문화유산축제] 2024 봄 궁중문화축전 기본정보 프로그램 사전예약방법 정리 [문화유산축제] 2024 봄 궁중문화축전 기본정보 프로그램 사전예약방법 정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올해 10주년을 맞이하는 ‘궁중문화축전’은 아름다운 고궁을 배경으로 다채로운 전통문화 활용 콘텐츠를 선보여온 국내 최대 문화유산 축제인데요. 은 오는 4월 27일부터 5월 5일까지 9일간 서울의 5대 고궁(경복궁·창덕궁·덕수궁·창경궁·경희궁)과 종묘 일대에서 개최됩니다. 지난해에도 총 67만 5천여 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방문하며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아래 2024 봄 궁중문화축전 기본정보와 프로그램, 사전예약방법을 빠르게 확인하시고 사전예약하여 다양하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목차 1. 2024 봄 궁중문화축전이란? 2. 2024 봄 궁중문화축전 기본정보 3. 2024 봄 궁중문화축.. 2024. 4. 7.
경복궁 경회루에서 청동용이 나온 이유! 조선궁궐 이야기 ◆ 경복궁 경회루에서 청동용이 나온 이유! 조선궁궐 이야기 안녕하세요! 행복한 하루되세요^^. 오늘은 경복궁 경회루 연못에서 청동용이 나왔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경회루 연못에서 청동용이 발견된 사건은 1997년 11월에 일어났습니다. 당시 경회루 연못의 북쪽에서 청동으로 만들어진 청동용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청동용은 길이 146.5㎝, 넓이 14.2㎝, 무게 66.5㎏로 크기가 상당히 컸습니다. 『경회루전도』에 따르면 경복궁이 중건될 당시 화재 방지를 위해 청동으로 만든 용 두 마리를 연못 북쪽에 놓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조선의 궁궐 건축물은 주로 목재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재에 취약했기 때문에 화재 예방을 위한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물과 구름을.. 2024. 1. 24.
현 청와대 자리가 경복궁이었던 사실! 정말 사실일까요? ◆ 현 청와대 자리가 경복궁이었던 사실! 정말 사실일까요?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되세요^^. 현재의 청와대 자리가 경복궁이었던 사실이 정말 사실일까요? 예, 맞습니다.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옛날에 경복궁 후원(북원으로도 표기)이 있던 자리입니다. 경복궁 북쪽 문인 신무문 뒤로 후원이 있었는데요. 흥선대원군이 1865년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그 후원에 경무대, 융무당, 융문당 등의 건물을 지었습니다. 후원에서는 왕과 신하들이 활쏘기를 하거나 나라의 인재를 뽑는 과거시험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1929년 조선박람회를 거치면서 건물은 대부분 철거되었습니다. 한 동안 공원으로 남아 있던 경복궁 후원 자리에, 일제 침략자들은 1939년 남산에 있던 조선총독부를 경복궁으로 옮겨 청사를 지으면서.. 2024. 1. 18.
경복궁 광화문 앞 ‘해치’의 숨은 비밀! 조선궁궐 이야기 ◆ 경복궁 광화문 앞 ‘해치’의 숨은 비밀! 조선궁궐 이야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오늘은 경복궁 광화문 앞에 세워진 ‘해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 가운데에 뿔이 있는 '해치'는 선악을 구별하고 정의를 지키는 전설 속의 동물입니다. 따라서 해치는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화재와 재앙을 막아주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져, 궁궐 입구 등에 조각하여 세워졌으며, 예전에는 해태라고 부르기도 했었습니다. 따라서 경복궁 광화문 앞의 해치는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로 간주되어 장식된 것으로, 전각 안에서 정사를 돌보는 임금의 공평무사의 뜻도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경복궁 중건 때 세워진 해치는 고종 시대에 근대 미술의 대가였던 이세욱님의 솜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2024. 1. 1.
과거와 현대 경복궁의 역사적 비교, 지금과 무엇이 다를까? ◆ 과거와 현대 경복궁의 역사적 비교, 지금과 무엇이 다를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오늘은 과거와 현대 경복궁의 역사적 비교, 지금과 무엇이 다를까? 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명을 받은 정도전 주도하에 1395년에 창건된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입니다. 북으로는 백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진 한양의 중심이었습니다. 창건 당시 경복궁 담장 안에 만들어졌던 건물은 약 755여 칸 정도로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이후 경복궁은 시간이 지나면서 경회루, 교태전 등 건물 확장과 중건을 거듭하다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완전히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경복궁은 270여 년간 복구되지 못하고 방치.. 2023. 12. 30.
조선건국 초기 경복궁을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요? 조선궁궐 이야기 ◆ 조선건국 초기 경복궁을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요? 조선궁궐 이야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조선건국 초기 경복궁을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요? 오늘은 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새로운 도읍지로 한양으로 결정하는데요. 태조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우고,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왕의 조상님들을 모시는 ‘종묘’를 짓고, 왕실 가족과 나랏일을 돕는 신하들이 머무르는 ‘궁궐’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신도궁궐조성도감을 설치하여 궁궐을 지었는데요. 걸린 시간은 10개월 정도였습니다. 궁궐 공사 이전에 먼저 땅을 살피는 조사를 하였고, 태조 3년인 1395년 12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다음해 9월에 경복궁을 완성하였습니다. 궁궐 안에는 나랏.. 2023. 12. 27.
경복궁 정문을 광화문이라 이름 붙인 이유! 조선궁궐 이야기 ◆ 경복궁 정문을 광화문이라 이름 붙인 이유! 조선궁궐 이야기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되세요^^. 경복궁의 정문, 왜 이름을 '광화문'으로 지었을까요? 오늘은 역사의 중심지인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의 의미와 그 배경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광화문은 조선 태조 4년 1395년에 세워진 경복궁의 주요 입구인 정문으로, 그 이름이 '광화문'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운 점 중 하나입니다. 광화문은 건립 당시에는 정문(正門), 혹은 오문(午門)으로 불리다가 세종 7년 1425년에 이르러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광화문'이라 명명되었습니다. 광화문의 '광화(光化)'는 '빛이 널리 비춘다.'라는 뜻으로 '세상을 밝히고 나라를 화평하게 하는 문'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조선 시대의 철학을 대표하는 말로, 모든.. 2023. 12. 26.
아픔과 영광이 얽힌 경복궁 광화문의 비밀! ◆ 아픔과 영광이 얽힌 경복궁 광화문의 비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좋은 나날되세요^^. 오늘은 우리나라의 아픔과 영광이 교차하는 곳 경복궁 광화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에 위치한 광화문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깊게 담긴 장소입니다. 경복궁 광화문은 조선 시대에 지어졌으며, 광화문'이란 이름은 '세상을 밝히고 나라를 화평하게 하는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광화문의 역사는 평화롭지만은 않았습니다. 1592년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865년 고종 때 270 여년간 버려졌던 경복궁이 중건사업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완전히 모두 소실.. 2023. 12. 25.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덕홍전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덕홍전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조선 궁궐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덕수궁 덕홍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덕수궁 덕홍전은 함녕전 옆 서쪽에 있는 전각이다. 덕홍전은 덕수궁의 건물 중에서 현대에 세운 시설물을 제외하고 가장 나중에 지었다. 원래 덕홍전 자리에는 한때 명성황후의 빈전과 혼전으로 쓰이던 경효전이 있었다. 그러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덕홍전은 함녕전을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할 때 일반 빈객들을 접견하기 위하여 경효전 자리에 1906년 건립한 후 1911년에 개조하였다. 주로 황제가 외국 사신이나 대신들을 만나던 접견실로 쓰였다. 이 전각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4칸이며 겹처마 팔작지붕의 단층이다. 측면.. 2021. 8. 30.
조선 궁궐 이야기 / 고종의 침전 덕수궁 함녕전 조선 궁궐 이야기 / 고종의 침전 덕수궁 함녕전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조선 궁궐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고종의 침전 덕수궁의 함녕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897년 건립된 함녕전은 고종황제가 일상생활을 하고 잠을 자던 침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04년 함녕전 온돌 수리공사 중 일어난 화재로 함녕전은 물론 덕수궁 내 전각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함녕전이 소실된 이후 고종은 중명전을 집무실 겸 침전으로 사용하였다. 함녕전은 이듬해인 1905년 8월에 중건하였다.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과 정전인 중화전 사이에 있다. 함녕전의 정문은 광명문이다. 덕홍전과는 한 영역에 있다. 함녕전은 1897년 당시 경복궁에 있던 만화당을 옮겨다 지었다. 1985.. 2021. 8. 24.
조선 궁궐 이야기 / 고종의 침전 덕수궁 함녕전 조선 궁궐 이야기 / 고종의 침전 덕수궁 함녕전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조선 궁궐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고종의 침전 덕수궁의 함녕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897년 건립된 함녕전은 고종황제가 일상생활을 하고 잠을 자던 침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04년 함녕전 온돌 수리공사 중 일어난 화재로 함녕전은 물론 덕수궁 내 전각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함녕전이 소실된 이후 고종은 중명전을 집무실 겸 침전으로 사용하였다. 함녕전은 이듬해인 1905년 8월에 중건하였다.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과 정전인 중화전 사이에 있다. 함녕전의 정문은 광명문이다. 덕홍전과는 한 영역에 있다. 함녕전은 1897년 당시 경복궁에 있던 만화당을 옮겨다 지었다. 1985.. 2021. 8. 24.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중화문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중화문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덕궁의 중화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중화문은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의 정문으로 1902년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1904년 덕수궁 대화재로 소실된 후 새로 만들어 세웠으며, 본래 중화문 좌우에 행각이 있었으나 없어지고 동측에 일부만 남아 있다. 중화문은 대한문으로 들어가 일직선상으로 금천교를 건넌 뒤 조원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보인다. 이는 광화문에서 근정문까지 일직선인 경복궁과는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경복궁은 예법에 따라 반듯하게 구획한 반면, 덕수궁은 원래 궁궐이 아닌 곳을 확장하며 지었기 때문이다. 중화문은 조선의 5대 궁궐 정전의 정문 중에서 유일하게 20세기에 창건되.. 2021. 8. 4.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금천교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금천교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덕궁의 금천교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덕수궁의 대한문을 지나 건너게 되는 금천교는 1986년에 발굴 복원한 것이다. 덕수궁을 관통하도록 하여 만든 금천에 놓은 돌다리로 2개의 나란한 홍예교로 되어 있다. 조선의 모든 궁궐은 정전의 문 앞에 명당수가 흐르도록 하는 게 정석이었다. 배산임수의 풍수관에 따라 임금의 공간을 명당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이다. 배산임수란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땅을 말한다. 그리고 명당수가 흐르는 궁궐의 물길을 금천이라고 하였다. 이 금천은 정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임금이 지내는 거룩한 내부공간과 외부의 일상적인 공간을 구별해주는 경계.. 2021. 8. 3.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덕궁의 정문인 대한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한문은 덕수궁의 정문이다. 원래 덕수궁의 정문은 남쪽으로 난 인화문이었는데, 환구단 건립 등으로 덕수궁의 동쪽이 새로운 도심이 되자 동문인 대안문을 정문으로 삼았다. 1904년 덕수궁 화재로 1906년 중화전 등을 재건하면서 대안문을 대한문(大漢門)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70년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33m가량 서쪽으로 물러 앉게 되면서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때 문을 해체하여 옮기지 않고 통째로 덕수궁 쪽으로 밀어 당기는 식으로 옮겼다고 한다. 대한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다포계 우진각지붕으로 겹처마에 단청을 했으며.. 2021. 7. 28.
조선궁궐 이야기 * 창경궁 선인문 조선궁궐 이야기 * 창경궁 선인문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경궁의 선인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선인문은 홍화문에서 이어진 궁 담장의 남쪽 곧 창경궁 동남쪽 담장에 있는 궁문이다. 이 문은 성종 때 처음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광해군 때 재건되지만 1857년(철종 8)에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문은 고종 연간에 재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이 문의 예전 이름은 서린문이며, 동궁의 정문으로 조정의 신하들이 출입하였다. 또한 세자가 궁 밖을 드나들 때, 특히 성균관 입학할 때 이용하였다. 선인문은 1층 목조 건물이다. 정면 2칸, 측면 2칸, 총 4칸이며 공포를 두지 않은 민도리 양식이다... 2021. 7. 4.
조선 궁궐 이야기 * 창경궁 관천대(觀天臺) 조선 궁궐 이야기 * 창경궁 관천대(觀天臺)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경궁의 관천대(觀天臺)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창경궁의 관천대는 문정전 앞쪽에 있으며, 천문을 관측하던 소간의를 설치했던 돌로 만든 대(臺)이다. 조선 후기 숙종 때 평지에 만들어졌다. 보물 제851호이다. 관천대는 화강암 석대 위에 돌난간이 둘려 있고, 돌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대의 한 가운데에는 다시 돌대가 놓여 있어, 그 위에 소간의를 설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서운관지 書雲觀志〉에 의하면 창경궁 관천대는 1688년(숙종 14)에 축조된 것으로 높이는 2.2m이고, 크기는 가로 2.4m, 세로 2.3m 정도의 화강석 축조물로 그 위에 소간.. 2021. 7. 1.
조선궁궐 이야기 * 관덕정 조선궁궐 이야기 * 관덕정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경궁의 관덕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온실 오른쪽 야산 숲에 정자가 하나 보이는데 이곳이 관덕정이다. 이곳은 원래 누에를 치던 곳이었다. 1642년(인조 20)에 활쏘기를 위한 사정(射亭)을 지어 취미정(翠微亭)이라 불렀으며, 1664년(현종 5)에 이름이 관덕정으로 바뀌었다. 관덕정 아래에는 군사들이 활쏘기나 말타기 연습을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창경궁이 창경원이 되면서 많은 전각들이 헐렸음에도, 관덕정은 살아남았다. 다만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이후 1980년대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관덕정은 1층 목조 건물이다. 네모난 돌 기둥을 .. 2021. 6. 30.
조선궁궐 이야기 * 대온실 조선궁궐 이야기 * 대온실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경궁의 대온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창경궁의 춘당지 바로 북쪽에 있는 대온실은 1909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다. 대온실은 일제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을 창덕궁에 유폐시킨 뒤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창덕궁에 인접한 창경궁 내에 동물원과 함께 지었다. 대온실은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하여 완성하였으며,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유리로 둘러싼 서양식 온실이다. 그때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19세기 근대건축의 새로운 유형인 철과 유리가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건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 11월.. 2021. 6. 29.
조선궁궐 이야기 * 팔각 칠층석탑 조선궁궐 이야기 * 팔각 칠층석탑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경궁의 팔각 칠층석탑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창경궁 안에 있는 이 팔각 칠층석탑은 라마식 석탑으로, 기존의 석탑과는 양식을 달리하는 탑이다. 높이 6.5m 규모인 이 탑은 현재 창경궁 내 대온실(식물원) 앞 연못 춘당지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 춘당지를 따라 왼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팔각 칠층석탑이 보인다. 1992년 1월 15일에 보물 제1119호로 지정되었고, 창경궁 관리소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이 탑은 조선 성종 원년 중국 명나라(1470년) 때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일제 강점기인 1911년에 창경궁에 이왕가 박물관을 건립할 때 만주에서 가지고 온 상인으.. 2021. 6. 28.
조선궁궐 이야기 * 창경궁 춘당지 조선궁궐 이야기 * 창경궁 춘당지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경궁의 춘당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춘당지는 창경궁의 호리병 모양의 연못이다. 아래쪽 큰 연못과 위쪽의 작은 연못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연못 이름은 근처에 있던 춘당대에서 따왔다. 그렇지만 이 두 연못이 전부 춘당지는 아니었다. 아래쪽의 큰 연못은 논을 일컫는 내농포로 국왕이 궁궐 안에서 직접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곳이었다. 즉 왕이 친히 모를 심고 추수를 통해 신하들에게 나눠주며 백성들의 생활을 몸소 체험했던 곳이다. 아래쪽 내농포는 원래는 조그마했으나 1909년 일본인들에 의해 이곳이 연못으로 개조되고, 기존에 있던 북쪽 연못과 합쳐 이름을 춘당.. 2021.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