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3대 대첩지 탐방 - 행주산성
본문 바로가기
여행축제방송연예

임진왜란 3대 대첩지 탐방 - 행주산성

by yeonjaei 2020. 9. 9.
반응형

임진왜란 3대 대첩지 탐방 - 행주산성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어제는 임진왜란 3대 대첩지 탐방의 일환으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에 있는 행주산성을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행주대첩의 역사적 현장인 행주산성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행주산성과 행주대첩

 

 

행주산성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을 이룬 역사적 현장이다. 산성은 덕양산(124.9m)7, 8부 능선에 흙을 이용하여 둘러쌓은 퇴뫼식 토성이다. 전체 둘레 길이는 약 1km에 이르며, 면적은 354,7321963년 사적 제56호로 지정되었다.

 

행주산성의 정확한 축성연대와 목적은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 백제 때 처음 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성은 덕양산 정상부를 에워싼 소규모의 내성과 북쪽으로 뻗은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의 이중구조이나, 외성 성벽은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지형은 동남쪽으로 한강을 끼고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북서쪽으로는 두 개의 좁은 골짜기가 능곡 평야를 향해 뻗어 있다. 산성 아래는 서해안으로 뱃길과 연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넓은 평원을 끼고 있어 삼국시대부터 군사·문화·교통과 관계된 요충지로 삼국이 이 지역을 차지하고자 뺏고 빼앗기는 역사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서 대승을 거둔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당시 1593212일 하루 동안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대파한 전투이다. 전라도 순찰사 권율 장군이 이끌었고, 서울 수복을 위해 북상하다가 행주산성에서 권율 장군과 휘하 군사 23백 명과 부녀자 등 민관이 일치단결하여 3만 명의 왜군을 크게 쳐부수어 승리한 싸움을 말한다.

 

이때 동원된 부녀자들이 긴 치마로 돌을 날라 석전(石戰)을 벌인 것이 유명하다. 여기에서 행주치마가 유래됐다. 이렇듯 관민이 일치단결해 일궈낸 행주대첩이다. 이 역사적 사건은 한산도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행주대첩으로 왜군은 한성에서 철수하고 점차적으로 한반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권율 장군은 조선의 전 군을 지휘하는 도원수가 되었으며 사후에는 선조 임금이 선무공신 일등 공신에 봉하고 '충장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행주대첩의 승리 요인은 다음과 같다.

1. 권율 장군의 뛰어난 전략 전술이 있었다.

2. 최첨단 과학 무기 신기전이 있었다.

3. ··군의 혼신을 다한 협동심이 있었다.

4. 산성의 자연적, 지리적 조건이 탁월했다.

 

대첩문(행주산성 주 출입문)

 

1970년 건립하였으며 행주산성으로 들어가는 주 출입문입니다. 정면 3, 측면 2, 높이 4.7m의 평삼문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지붕 안쪽에 홍살문을 넣어 행주대첩지의 숭고한 뜻을 상징하고 있다. 이 세 개의 문은 사당이나 서원의 삼문 형태를 따르고 있다.

 

권율 장군 동상

 

권율 장군 동상은 충장공 권율 도원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1986년 역사적 고증을 통하여 김세중 조각가가 제작하였다.

 

동상 뒤편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4점의 부조물은 권율 장군과 함께 행주대첩을 이루어낸 관군, 승병, 의병, 여성들의 항전 모습입니다.

 

충훈정(행주산성 국궁장)

 

충훈정은 1986년 건립하였으며 2층 누각으로 팔짝 지붕에 정면 5, 측면 5칸 규모이다. 옛날의 주무기인 각 궁의 연습 도장으로 심신을 단련하며 호국 의식을 함양하는 국궁장이다.

 

행주대첩제 때에는 국궁 대회가 열리며, , 가을 주말에는 국궁 체험장을 별도로 운영하여 일반관람객에게도 국궁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충장사(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

 

충장사는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70년 건립하였다. 규모는 정면 3,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권율 장군 사당은 이전 1842년 조선 헌종 때 현재의 행주서원 자리에 지은 기공사가 있었다. 그러나 전란 등으로 무너져 새로이 충장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건립하였고 이후 기공사도 예전 자리에 복원하였다.

 

충장사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는데, 1970년 충장사 건립 당시 세워졌다. 홍살문은 충신, 열녀, 효자 등을 배출한 집안, 또는 사당, 서원, 향교, 능과 묘 등에 설치하여 신성한 장소를 보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위 아래 사진의 전사청은 1987년 건립하였으며, 충장사 제례 봉행 때 필요한 제례 용품들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대첩 기념관(행주대첩의 전황과 무기 전시관)

 

대첩 기념관은 행주대첩 기념관으로 행주대첩 당시 무기고와 군량 창고로 추측되는 자리에 1980년 건립하였다.

 

전시물은 화차인 신기전을 비롯하여 각궁, 총통 등 무기류와 권율 장군 승전도 3, 토성에서 출토된 와당 및 토기 파편 등의 유물, 그밖에 조선 시대 장군과 나졸 형상과 대첩 비문 액자 및 병풍, 망암 변이중 선생 문집 등이 있다.

 

진강정

 

1970년 건립한 사각 지붕, 건평 36의 정자이다. 호젓한 위치에 있어 행주산성에서 한강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다. 정자 이름은 한강의 홍수를 막는다는 의미로 진강(鎭江)입니다. 한글 현판으로 서희환 선생의 휘호입니다.

 

특히 이곳은 2013년부터 행주나루터와 연결된 행주산성 역사누리길이 지나는 곳으로 누리길을 걷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도 하고 있다.

 

덕양정

 

1970년 건립한 팔작지붕, 건평 44의 정자이다. 덕양산의 이름을 딴 정자로 오르막길을 올라오다 땀을 식히기에 좋은 곳이다. 사방이 트여있는 전망은 주변 환경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대첩비각과 행주대첩비

 

대첩비각은 1602년 건립한 것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다. 비의 크기는 178, 너비 80, 두께 18의 대리석 재질이다. 권율 장군이 돌아가신 후 행주대첩의 승전을 되살리고자 장군의 휘하 장수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최립이 비의 앞면 글을 짓고 한석봉이 글씨를 썼으며, 비의 머리글은 김상용이 썼다. 행주산성에 있는 유일한 문화재입니다.

 

정상에 서 있는 15.2m의 행주대첩비는 1970년 건립한 것으로 탑신의 글은 박정희 대통령이 쓰고 아래 비문은 신석호가 짓고, 글씨는 서희환이 썼다. 이 비는 1963년 경기도민과 가계 유지들에 의하여 세워진 기념비로 1970년대 새롭게 보수, 재건되었다.

 

충의정

 

1977년에 건립한 영상교육관으로 임진왜란과 행주대첩 승리에 대한 영상물을 상시 상영한다. 지금은 코로나 19로 휴관 중입니다.

 

토성

 

토성은 흙으로 쌓은 퇴뫼식 토축성으로 덕양산 7~8부 능선에 둘러쌓았다. 1992415m를 복원하였으며 총길이는 1이다. 토성에서는 삼국시대 와당 및 토기 파편들이 출토되어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군사적 요새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고 한다.

 

 

토성문지. 행주산성 토성의 출입문이 있었던 곳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