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선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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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선정릉

by yeonjaei 2020.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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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선정릉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어제는 역사 탐방의 일환으로, 서울 강남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선정릉을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선정릉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선정릉은 서울 강남구 선릉로 1001에 있다. 선릉은 조선 9대 성종과 3번째 왕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이고, 정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능이다. 1494년 성종의 선릉이 조성되었고, 1530년 정현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동원이강릉 형태로 능이 조성되었다.

 

중종의 정릉은 원래 1545년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고양 서삼릉 안에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과 함께 조성되어 정릉으로 고쳤다가, 1562년 중종의 정릉을 이곳으로 옮겨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조선왕릉은 세계문화유산이다. 조선왕릉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써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20096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600여 년 전의 제례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정릉

 

 

정릉은 조선 11대 왕 중종의 능이다. 단릉의 형식으로 왕 한 분을 모신 능이다. 원래 고양 서삼릉 안에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과 함께 지금의 예릉 철중의 능자리에 조성하고 정릉이라 하였다. 명종 17년 중종의 3번째 왕비인 문정왕후가 중종의 능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정릉은 임진왜란 때 선릉과 함께 왜구에 의해 능이 파헤쳐지고 재궁이 불태워지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중종은 성종과 경현왕후의 아들로 처음에는 진성대군이 봉해졌다가 1506년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에 연산군대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았고, 향약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등 업적을 남겼다. 1544(중종 39)에 창경궁 환경전에서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선릉 

 

 

선릉은 조선 9대 왕 성종과 성종의 3번째 왕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이다. 선릉(성종의 능)의 앞에 있는 정자각 쪽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에 성종의 능이, 오른쪽 언덕에 정현왕후의 능이 있다.

 

1494(성종 25)에 성종이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495년에 광주 학당리(현 선릉)에 능을 먼저 조성하였다. 원래 이 자리는 세종의 아들인 광평대군묘역이 있던 자리였으나, 선릉이 조성되면서 광평대군묘역은 현재 강남구 수서동으로 이장되었다. 그 후 1530(중종 25)에 성종의 왕비 정현왕후 윤씨가 세상을 떠나자 선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연산군의 생모 윤씨가 폐비된 이후 중전의 자리에 오른 정현왕후는 연산군을 친아들처럼 키웠고, 연산군 역시 정현왕후 윤씨를 친어머니로 알고 자랐다.

 

연산군이 윤씨(폐비 윤씨)가 폐위되어 죽은 것을 알고 폐비 윤씨의 죽음과 연루된 귀인 정씨와 엄씨를 잔인하게 때려죽인 뒤 장검을 들고 정현왕후의 처소로 들어가 어서 밖으로 나오라며 행패를 부린 적이 있다고 하나, 연산군은 정현왕후를 해치지 않았고, 정현왕후의 아버지 윤호가 폐비 윤씨의 복위를 앞장서 반대했음에도 정현왕후에 대한 예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현왕후는 원래 성종의 후궁이였는데, 성종 11년에 왕비가 되었다. 1506년에는 대비의 자격으로 아들 진성 대군을 왕으로 추대한 중종 반정을 허락하기도 하였다.

 

 

성종은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 인수대비의 아들로 13살에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동안 경국대전과 국조오례의를 완성하는 등 유교적 통치이념에 기반하여 법제를 정비하였다. 1494(성종 25)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38세로 세상을 떠났다. 성종은 백성들이 사는 것을 둘러보기 위해 미행(임금이 변복을 하고 궁궐 밖에 나가 민정을 살피는 것)을 자주 했다고 전해진다.

 

선릉은 유독 수난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그 첫 수난은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선조 26)에 일어났다. 선조실록1593413일자의 기사에는 왜적이 선릉과 정릉을 파헤쳐 재앙이 재궁에까지 미쳤으니 신하로서 차마 말할 수 없이 애통합니다.”라는 경기좌도관찰사 성영의 치계와 이 서장을 보니 몹시 망극하다. 속히 해조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치하게 하라.”는 선조의 명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1625(인조 3)에는 정자각에 불이 나고, 그 다음 해에는 능침에도 불이 났다고 한다.

   

 

출구로 나가는 길에 선정릉 역사박물관(코로나19로 휴관 중)

 

 

 

재실이다. 재실은 제례를 지내기 전 제관들이 미리 도착하여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다. 평소에는 종9품 참봉 등의 관리가 이곳에 상주하면서 능과 그 주변을 돌보았다.

탐방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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