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양도성 순성길 6코스 인왕산 구간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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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도성 순성길 6코스 인왕산 구간 탐방

by yeonjaei 2020.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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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도성 순성길 6코스 인왕산 구간 탐방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 6코스 인왕산 구간을 탐방하였는데, 오늘은 한양도성 순성길 인왕산 구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양도성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태조 5(1396)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멱(남산), 인왕의 내사산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이며 4소문은 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주변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특히 동서남북 4대문에는 유교의 4가지 덕목인 , , , 를 담았다.

 

한양도성 순성길

 

 

한양도성 순성길은 백악·낙산·남산(목멱산인왕산 구간과 흥인지문·숭례문 구간 등 6구간으로 나뉜다. 백악 구간은 창의문에서 시작하여 숙정문, 말바위 안내소, 와룡공원을 지나서 혜화문까지 이르는 구간이고(난이도 ), 낙산 구간은 혜화문에서 시작하여 낙산공원, 한양도성박물관, 동대문성곽공원을 지나서 흥인지문까지 이르는 구간(난이도 )이다. 그리고 흥인지문 구간은 흥인지문에서 시작하여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광희문을 지나서 장충체육관까지 이르는 구간(난이도 )이다.

 

남산(목멱산) 구간은 장충체육관에서 시작하여 장충체육관 뒷길, 나무계단길, N서울타워를 지나서 백범광장까지 이르는 구간(난이도 )이고, 숭례문 구간은 백범광장에서 시작하여 숭례문, 소의문 터, 정동을 지나서 돈의문 터까지 이르는 구간(난이도 )이며, 인왕산 구간은 돈의문 터에서 시작하여 월암공원, 인왕산 순성길을 지나서 창의문까지 이르는 구간(난이도 )이다.

 

인왕산 구간

 

 

인왕산 구간은 돈의문 터에서 시작해 인왕산을 넘어 윤동주 시인의 언덕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해발 339m인 인왕산은 풍수상 우백호에 해당한다. 거대한 바위들이 노출되어 있는 바위산으로 치마바위, 선바위, 기차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다. 인왕은 불교식 명칭으로, 무학대사가 이 산을 주산으로 삼으면 불교가 융성할 것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9681·21 사태 이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다가 1993년 개방되었다.

 

인왕산 구간의 거리는 4km, 소요 시간은 약 2시간 30, 주요 구간은 돈의문 터(돈의문박물관마을) - 경교장 - 월암공원 - 홍파동 홍난파 가옥 - 편의점(구 옥경이식품) - 인왕산 순성 안내 쉼터 - 인왕산 곡성 - 인왕산 범바위 - 인왕산 정상 - 윤동주 시인의 언덕 - 창의문이며, 난이도는 상()이다.

   

인왕산 주요 구간 탐방

 

 

돈의문 터에서 출발함. 돈의문터는 도성의 서대문인 돈의문이 있던 자리이다. 돈의문은 태조 때 처음 세워졌으나 태종 13(1413)에 만들어진 서전문이 서대문의 기능을 대신하였다. 그 위치는 현재 정확히 알 수 없다. 세종 4(1422)에 도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하면서 서전문을 닫고 새로운 돈의문을 세웠는데 현재 돈의문 터가 그 위치이다. 이후 돈의문은 새문 또는 신문으로도 불렸으며, 현재의 신문로라는 지명도 이에서 유래한다. 1915년 일제는 서대문을 지나는 전차를 개통하면서 이 문을 해체하여 건축자재로 매각하였다.

 

 

돈의문터 오른쪽에 있는 돈의문박물관마을도 잠시 둘러봄.돈의문박물관마을은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로서의 역사적 가치와 흘러간 근현대 서울의 삶과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 서울형 도시재생 방식을 통해 재탄생한 도심 속 마을 단위 역사·문화공간이다. 현재 돈의문박물관마을은 <근현대 100, 기억의 보관소> 콘셉트로 새롭게 단장을 마치고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돈의문박물관마을 왼쪽 강북삼성병원안에 있는 경교장도 둘러봄. 경교장은 사적 제4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194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 후 1946년까지 사실상 임시정부 청사로 사용된 곳으로, 국무위원회 개최 및 신탁통치 반대운동의 주 무대가 되었다. 또한 주석 김구가 약 4년간(1945~1949) 거주하다 서거한 역사의 현장이다. 서거 이후 60년간 중화민국 대사관저, 월남대사관, 병원시설 등으로 사용되다가 20133월 김구 거주 당시의 임시정부 활동공간으로 복원하여 시민에게 개방하였다.

 

 

 

월암공원을 따라 최근에 쌓은 성벽이다. 월암공원을 조성하면서 서울시 복지재단(구 기상청 건물)의 담장 축대 아래 묻혀있던 성벽의 일부가 드러났다. 홍파동 홍난파 가옥 부근 연립주택 건물 주차장 뒤편에도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월암공원과 홍파동 홍난파 가옥이다. 홍난파 가옥은 등록문화재 제90호로 봉선화’, ‘고향의 봄등으로 유명한 작곡가 홍난파 선생(1898~1941)이 살던 집이다. 그의 대표곡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작곡되었다. 1930년대 서양식 주택 양식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홍난파 가옥 근처의 딜쿠샤(테일러 가옥)와 권율 도원수 집터도 둘러봄. 딜쿠샤는 미국인 금광 기술자로 UPI 서울 특파원을 겸하면서 3·1 운동을 세계에 알렸던 앨버트 테일러가 짓고 거주(1923~1942)했던 서양식 건축물이다. 딜쿠샤는 힌디어로 '희망의 궁전'이라는 뜻으로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이 건물의 내력은 2006년 앨버트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방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현재 복원공사 중~~

 

 

 

딜쿠샤 바로 옆에는 수령 45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는데, 행주대첩을 이끈 권율 장군의 집에 있던 나무로 전해지며, 행촌동이라는 지명도 이 나무에서 유래한다.

 

 

 

권율 장군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으로 큰 공을 세웠다. 권율 장군은 1537(중종 32) 영의정 권철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오성대감으로 유명한 이항복이 사위이다. 1582~1592년까지 10년 동안 문관으로 내직을 역임하다 임진왜란 때 광주목사, 전라도순찰사, 도원수 등을 역임하면서 임진왜란 명장으로 활약하였다.

 

 

 

사직근린공원 부근 성곽이다. 한양도성 전 구간 중 성 안과 성 밖을 모두 살펴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성벽 안쪽의 넓은 길에서는 도심의 고층 빌딩을 바라보며 편히 걸을 수 있고, 바깥쪽 오솔길에서는 담쟁이넝쿨과 고풍스러운 성벽이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조경 및 조명 시설이 잘 되어 있어 밤에 보는 성벽의 모습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사직근린공원에서 인왕산 입구까지 이동.

 

 

인왕산 입구에서 내부 순성길을 따라 인왕산 방향으로 오름.

 

 

 

인왕산 성곽 초소 이야기

1968년 북한의 무장 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목적으로 1970년부터 2006년까지 북악산(백악산)과 인왕산 등에 30개소 이상의 경계 시설물(경계 초소, 초소 등)을 설치하였다. 인왕산 121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후 인왕산 탐방로가 제한적으로 개방되었고, 2002년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성벽 주변의 철조망 등을 철거하면서 개방의 폭을 넓혀갔다.

한양도성 성벽에 설치한 경계 초소 20개소 중 17개소를 철거하고 성벽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201910월에 공사를 완료하였으며, 3개소(52T, 63-1T, 64-2T)는 훼철과 복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을 위하여 남겨 두었다.

 

 

 

성벽 왼쪽으로 선바위가 보인다. 선바위는 고깔 쓰고 장삼 입은 승려가 참선하는 형상의 바위이다. 불교를 배척했던 정도전이 한양도성의 경계를 정하면서 일부러 선바위 있는 곳을 제외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선바위 밑에는 국사당이 있다. 국사당은 중요민속문화재 28호로 조선 태조 때 남산에 세운 국가 신당이다. 일제가 남산 중턱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국사당을 헐자 이곳에서 제례를 지내던 무속인들이 인왕산 서쪽 자락으로 옮기고 사설 무속 신당으로 바꾸었다.

 

 

 

인왕산 곡성이다. 곡성이란 주변을 관찰하기 좋은 전략적 요충지에 성벽을 지형에 따라 길고 둥글게 내밀어 쌓은 성을 말한다. 인왕산 곡성은 현재에도 군사시설로 이용되고 있어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인왕산 범바위다. 범바위는 호랑이 모양인 데서 유래된 이름으로 호암이라고도 하였다. 인왕산 중턱에 범 한 쌍이 살면서 무악재를 넘나들었으나 사람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고 나쁜 사람들이 지나가면 노려보면서 포성을 질렀다고도 한다.

 

 

 

범바위에서 인왕산 정상으로 오름. 해발 338m인 인왕산은 큰 화강암 덩어리들로 이루어진 바위산으로 정상에 가까울수록 험준하다. 이런 지형적 특성 때문에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자연 암반이 성벽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큰 바위들과 어우러져 끊어질 듯 이어진 성벽은 한양도성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인왕산 정상이다. 인왕산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누상동·사직동과 서대문구 현저동·홍제동에 걸쳐 있는 산으,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이라고 하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렀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다.

 

인왕산의 높이는 338m이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암반이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의 능선을 따라 지나며 동쪽 산허리에 북악산길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인왕산에서 창의문 방향으로 하산 시작.

 

 

기차 바위. 기차를 연상시키는 바위의 모습이 멀리서 보면 멋지고 아름답다.

 

 

 

한양도성 외부 순성길로 나가 봄. 인왕산 구간에서도 시기별 축성 방법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태조, 세종, 숙종, 순조, 그리고 그 이후에 쌓은 성돌이 공존하는 구간이 꽤 길게 이어진다.

 

   

다시 한양도성 내부 순성길로 들어와 창의문 방향으로 이동.

 

 

한양도성 성곽초소 이야기

 

 

 

한양도성의 각자 성석

해석 : 여기 있는 각자 성석은 순조 6(1806) 11월 최일성이 공사를 돌봤고, 이동한이 공사를 감독했으며 전문 석 수 용성휘가 참여하여 성벽을 보수했다는 내용이다. 축성과 관련된 기록이 새겨진 성돌을 각자 성석이라고 한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다. 이 언덕은 윤동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종로구 누상동에서 하숙했는데, 그가 이 일대를 거닐며 시상을 가다듬었을 것으로 보아 이 자리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언덕 위에 그의 대표작 서시를 새긴 커다란 시비가 있다.

 

 

 

윤동주문학관이다. 윤동주 문학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문학관이다. 종로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잇으며 폐기된 상수도 가압장을 리모델링하여 만들었다. 2012725일 개관하였다.

 

 

 

윤동주 문학관 앞 길건너 1·21 사태로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 동상이 있다. 1968121일 북한의 특수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하였다. 당시 종로경찰서장이던 최규식 총경은 북한군과 교전 중 창의문에서 순직하였다. 이 사건 이후 백악과 인왕산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는데, 1994년에는 인왕산이, 2007년에는 백악이 각각 다시 개방되었다.

 

 

최규식 동상 옆에는 정종수 경사 동상도 있다 

 

 

 

창의문으로 들어가는 계단 왼쪽으로는 청계천 발원지라는 표석이 있다. 이곳에서 북동쪽 북악산 정상에서 약 150미터 지점에 항상 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약수가 있으므로 이를 청계천 발원지로 정하였다고 적혀있다.

 

 

 

창의문이다. 보물 제1881호인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문이다.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 시대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문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영조 17(1741) 다시 세운 것이다. 영조 때 문루를 새로 지으면서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이 문으로 도성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걸어놓았다. 이 현판은 지금도 그대로 걸려있다. 현재는 자하문으로 더 많이 불리는데, 이 문 부근의 경치가 개경의 승경지였던 자하동과 비슷하여 붙은 별칭이다. 

한양도성 순성길 6코스 인왕산 구간 탐방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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