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 토정로에서 만난 토정 이지함 선생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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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 토정로에서 만난 토정 이지함 선생 동상

by yeonjaei 2020.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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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 토정로에서 만난 토정 이지함 선생 동상 

 

어제는 서울 마포 쪽에 일이 있어 갔다가 토정로에 서 있는 토정 이지함 선생의 동상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 내용이 궁금하기도 하여 표지석이 쓰인 글을 읽어보고 사진도 찍으며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습니다. 

토정 이지함 선생은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토정비결>의 저자인데요. 선생은 이곳 일대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토정 이지함 선생 동상

 

토정 이지함 선생 동상이 있는 곳은 서울 마포구 토정동에 있으며, 지하철 마포역 1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 걸어가다가 오른쪽 토정로 방향으로 걸어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누가 코로나 19로 마스크를 쓰워 드렸네요.

이지함 선생(1517~1578)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기인으로, <토정비결>의 저자입니다. 본관은 한산, 자는 형중 호는 토정으로 현령 치의 아들이며, 목은 색의 후손입니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한강의 마포 강변(현재 서울 마포구 토정동 마포주차장 부근)에서 흙담 움막집을 짓고 청빈하게 살았는데, 그로 인하여 토정이라는 호가 붙여지게 되었으며, 그의 기이한 행동과 예언 술수에 대한 많은 일화가 세간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지번에게 글을 배웠으며, 후에 서경덕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그에게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성리학뿐만 아니라 수리, 의학, 복서에 밝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나고, 일 년의 신수를 보아달라는 요구가 많아져서 <토정비결>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1573(선조 6)에 유일로 천거되었고 이듬해 포천 현감이 되었으며, 재임 중에 임진강의 범람을 예견하고 미리 대비하여 많은 인명을 구했습니다. 이어 1578년에는 아산 현감에 임명되어 걸인과 기민, 노약자의 구호에 힘썼으며, 재임 중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시호는 문강이며, 아산의 인산 서원과 보령의 화암 서원에 배향되었고, 숙종 때인 1713년에 명현으로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습니다. 저서로서는 <토정비결><토저유고>가 있습니다.

 

토정 이지함의 구휼 활동 재현 :“귀한 소금 받아 가시구려 

 

토정 이지함 선생 동상 길 건너 맞은 편에는 선생의 구휼 활동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토정 이지함은 맨손으로 바다와 갯벌, 무인도를 이용하여 2~3년 만에 몇만 섬의 곡식을 쌓았습니다. 그는 직접 지은 토정 옆에 곡식을 쌓아 놓고 굶주린 백성들, 특히 부녀자와 노인,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또 선생은 토정을 근거지로 삼고 무궁무진한 바다와 땅을 이용해 생업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자립의 길을 열어주고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조선 최초의 양반 상인 이자, 실학의 선구자였습니다.

 

토정 이지함 선생 집터

 

 

 

토정 이지함 선생 동상에서 앞으로 길을 건너 똑바로 조금 걸어가다가 왼쪽으로 들어가면 한강 삼성 래미안 아파트가 보입니다. 그 아파트 입구 좌측에 토정 이지함 선생 집터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이곳이 조선 중기 명현으로 성리학자였던 토정 이지함 선생이 살던 집터 부근이라고 합니다. 해방 직후까지 이곳에는 토정의 옛 집터로 전해지는 빈터가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토정의 옛 고을 이름에 아랫 토정, 윗 토정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이 예전부터 토정리로 불리었다고 하네요.

 

토정 터와 토정 이지함 선생 영모비

 

토정 이지함 선생 집터 표지석이 있는 그 삼성 래미안 아파트 뒤편으로 또 토정 터표지석과 토정 이지함 선생 영모비가 있습니다. 

토정 터에는 조선 중기 저명한 역학자였던 토정 이지함의 집터라고 쓰여 있으며, 내 고장 역사 인물 토정 이지함 선생 영모비에는 토정 선생에 대한 도덕적 애민 사상과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 토정동 옛 집터에 영모비를 세우다라고 쓰여 있는데, 2007413일 토정동 주민 일동이 세웠다고 합니다.

 

마포나루 터

 

토정 터까지 온 김에 강변북로 나들목을 지나 토정 이지함 선생이 활동했을 한강 마포나루 터까지 가보았습니다. 마포나루 터 왼쪽에도 토정 이지함 선생과 관련한 안내판이 있네요.

 

마포나루는 한강 최대 나루 중 하나였으며, 옛 이름은 삼개나루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서해를 거쳐 온 배들이 집결하는 주요 표구였는데, 특히 조선 후기에는 바닷물이 마포 앞까지만 역류하게 됨으로써 수륙 물산의 집결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 삼남 지방에서 올라 온 조세 곡을 보관하는 광흥창이 이곳 일대에 있었으며, 서해안지역에서 생산된 소금과 젓갈도 주로 마포 주변에서 거래되었습니다. 주변에는 농기구, 무구 등을 생산하는 철제 수공업장과 술도가들도 많았다고 하네요.

 

마포나루는 육로 교통의 발달로 차츰 쇠퇴하였고, 마포대교의 건설로 기능이 상실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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