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 문화유산 답사 - 공민왕 사당, 광흥창 터, 광흥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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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 문화유산 답사 - 공민왕 사당, 광흥창 터, 광흥당

by yeonjaei 2020.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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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 문화유산 답사 - 공민왕 사당, 광흥창 터, 광흥당  

 

어제는 서울 문화유산 답사로 마포로 발길을 돌려 공민왕의 사당과 광흥창 터, 그리고 광흥당을 둘러보았습니다. 이 세 곳은 모두 한자리에 있습니다.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에서 하차하여 1번 출구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독막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면 서강 감리교회가 나옵니다. 이 교회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고 조금 더 가면 큰 회화나무와 느티나무들 사이로 공민왕 사당이 보입니다.

 

공민왕 사당 입구에는 등록문화재 공민왕 사당과 광흥창 터, 그리고 전통 문화공간인 광흥당이 있다는 표지석과 안내 표시가 있습니다.

 

공민왕 사당  

 

이곳은 기와지붕에 2칸짜리 목조건물로써, 고려말 자주정신이 투철하였던 공민왕의 사당입니다. 왕은 화기로도 유명하며 재위 시 이곳의 한 정자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시화를 즐겼다고 합니다.

 

공민왕 사당이 이곳에 있게 된 이유는 조선조 시대 지리적 여건으로 이곳 서강이 농산물의 집산지로 발달하게 되어 조정에서는 이곳 일대에 곡식 창고 였던 광흥창을 짓게 되었는데, 창고지기의 꿈에 공민왕이 현몽하여 여기는 나의 정기가 서린 곳이니 사당을 짓고 봉제하라. 그러면 번창하리라하여 사당을 지었다 합니다.

 

 그리고 제사가 소홀하거나 부정한 일이 있으면 창고에 화재가 나는 등 재앙이 뒤따라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 자시를 기하여 향제를 지냈으며, 현재도 마포문화원 주관으로 공민왕의 후손인 개성 왕씨 종친회와 인근 주민들이 함께 매년 음력 101일 제례를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6.25전쟁 때 파괴된 것을 전쟁 직후 주민들이 스스로 새로 건축한 것이라고 합니다. 과거 서강 나루가 번창했을 때, 이곳 주민들은 사당을 서강 선착장의 수호신으로 받들며 뱃길의 무사함을 기원하던 곳이었습니다. 사당 안에는 공민왕과 노국공주, 충신 최영 장군, 그 외 왕자, 공주, 옹주 등 6인의 영정(무속화)을 모시고 있습니다.

 

공민왕 사당은 200632일 국가 등록문화재 제231호로 지정되었으며, 민간 전통 건축술의 수준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며, 사당임에도 전면이 3칸이 아닌 2칸으로 역사적 건축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공민왕

 

공민왕은 고려 제31대 왕(재위 1351~1374)으로, 충숙왕과 공원 왕후 홍씨 사이의 둘째 아들이자 충혜왕의 동생이다. 원나라 순제에 의해 135110월 고려 제31대 왕에 올랐습니다 

공민왕은 중국 원나라 출신의 아내 노국공주를 사랑하면서도 반원 정책을 펼친 왕. 원나라 복장과 머리 모양 일색이던 왕실 풍습을 고려의 것으로 과감히 바꾼 개혁 군주로 잘 알려졌지요. 

또 공민왕은 무신 정권 시대를 거치며 잃어버린 왕권을 되찾고, 100년 동안 고려를 지배해 온 원나라를 멀리하며 고려의 자주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으로 개혁 정책을 펼칩니다. 그러나 홍건적의 침입으로 다시 원나라와 손을 잡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13652월 왕비 노국 공주가 아이를 낳다가 죽자 슬픔에 빠진 공민왕은 나랏일을 신돈에게 맡기고 자신은 공주의 명복을 비는 데 몰두했으며, 급기야는 정신병적인 증세까지 보였습니다. 13749월 홍륜, 한안 등의 무리들에게 비참한 죽임을 당해 4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능은 현릉으로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마련되어 있다.

 

노국대장 공주 

노국공주(?~1365)는 중국 원나라 위왕의 딸로 공민왕과 정략 결혼하여 왕비가 되었다. 공주는 원나라 황족이었지만 남편 공민왕이 행했던 개혁정치와 반원 정책을 적극 지지했던 정치적 동반자였습니다 

생전에 공민왕과 금술이 각별했다고 합니다. 1365년 난산 끝에 죽었는데 공민왕은 그녀를 매우 사랑하여 그녀가 죽은 뒤부터 정사를 돌보지 않았으며, 밤낮으로 공주를 생각한 나머지 정신병이 생겼다고 합니다.

 

광흥창 터 

공민왕의 사당 일대는 조선 시대 조정의 미곡 창고였던 광흥창이 있었으며, 사당 입구 오른쪽에는 '광흥창 터' 라는 표석이 있습니다.

광흥창은 호조 예속으로 조선 시대 관원들의 녹봉(봉급)으로 쓰일 미곡을 저장하던 창고를 말합니다. 이곳에 미곡을 쌓아두었다가 문관의 봉급을 이조에서, 무관의 봉급을 병조에서 정리하여 호조로 통보하고, 이에 호조는 광흥창에 연락하여 각 관원들에게 녹봉으로 미곡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녹봉을 나눠주는 날이 되면 관리들 댁의 하인들이 미곡을 받으러 창고에 몰려들곤 했다고 합니다.

 

 광흥당  

 

공민왕의 사당 오른쪽에는 사라져가는 전통문화 계승을 위한 한옥 문화공간인광흥당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공민왕 사당과 연계하여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향토사료 발굴과 전시, 청소년 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정 보호수 

 

공민왕 사당 안과 밖에는 200년도 넘은 회화나무, 느티나무 등 고목 다섯 그루가 세월과 벗하며 서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서울시 지정 보호수이자 공민왕 사당을 지키는 파수꾼들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서울 마포 문화유산 답사로 공민왕의 사당과 광흥창 터, 그리고 광흥당을 소개했습니다. 그동안 광흥창 지하철역에서 여러 번 지하철을 타고 내렸지만 광흥창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공민왕 사당은 마포 수호신으로뿐만 아니라 한강 주변의 중요한 문화유적으로 많은 사람이 한 번쯤은 찾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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