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혜화동 문화유산 투어 - 장면 가옥, 여운형 선생 서거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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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혜화동 문화유산 투어 - 장면 가옥, 여운형 선생 서거지 외

by yeonjaei 2020.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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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혜화동 문화유산 투어 - 장면 가옥, 여운형 선생 서거지 외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종로 문화유산 투어의 일환으로, 혜화동로터리 일대를 탐방하였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장면 가옥과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장면 가옥

 

 

장면 가옥은 서울 종로구 혜화로5길 53에 있으며, 2007101일 등록문화재 제357호로 지정되었다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로 나와 혜화동 우체국, 혜화동주민센터 방향으로 가다 보면 길 왼쪽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장면 가옥은 대한민국 제1공화국 국무총리와 부통령, 내각 책임제인 제2공화국 국무총리를 역임한 운석 장면(1899~1966)이 동성 상업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때 건립하여 선거할 때까지 30년 남짓 거주하였던 곳으로 근현대 정치사의 중요한 장소입니다.

 

장면의 처남인 건축가 김정희가 설계하여 지은 이 집은 안채를 비롯해 사랑채, 경호원실, 수행원실이 원형대로 잘 남아 있으며, 한국, 일본, 서양의 주거 양식이 혼합되어 나타납니다.

 

전통 한옥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욕실과 화장실의 내실화, 대청의 거실화 등 1930년대 주택 개량 운동과 신 주거 문화 운동의 영향이 드러나 있어, 근대 주거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원래는 개인 소유였으나 서울시에서 매입하였습니다.

 

 

운석 장면 선생은 1925년 맨해튼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가톨릭교 평양교구와 서울 동성 상업학교 교장으로 활동하다가 해방 후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초대 주미대사를 거쳐, 1951년 국무총리가 되었으나 이후 자유당에 맞서 야당 정치인으로 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4·19 이후 의원내각제인 2공화국의 총리를 역임했습니다.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지

 

 

서울 종로 혜화동 로터리에서 왼쪽으로 돌다 보면 길가에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지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나뉘면 쓰러질 것이오 합하면 일어서리라"

이곳은 1947719일 오후 1315분에 해방 이후 민족분단 위기를 극복하고자 온 힘을 기울이시던 몽양 여운형(1886~1947) 선생께서 민족 반역자의 사주를 받은 괴한의 흉탄에 쓰러지신 애통한 역사의 현장이다.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 제70주기를 추모하며, 서울 종로구와 경기 양평군이 공동 건립하다.

201711

 

몽양 여운형 선생은 일제강점기 조선건국동맹을 조직하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준비했던 독립운동가 및 정치가이다. 호는 몽양으로 1919년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이후 해방에 대비하고자 1944년 조선건국동맹, 1945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했다. 1946년 좌우합작운동이 일어났을 때 미군정의 지지를 받으며 좌우합작위원회를 정식으로 설립하고 미소 공동위원회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47719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되었습니다.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터

   

 

서울 종로 혜화동로터리 입구 왼쪽으로 창경궁 뜰 아남아파트 입구에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터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이 표지석에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는 조선(경성)여자의학강습소를 모체로 1938년 설립된 최초의 여성의학전문학교이다. 많은 여의사를 배출했으며, 1948년 서울여자의과대학으로 승격되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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