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동 근대 문화유산 답사 - 구 러시아공사관, 고종의 길, 구세군 중앙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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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동 근대 문화유산 답사 - 구 러시아공사관, 고종의 길, 구세군 중앙회관

by yeonjaei 2020.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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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동 근대 문화유산 답사 - 구러시아공사관, 고종의 길, 구세군 중앙회관

  

 

오늘은 지난번 서울 중구 정동 일대 근대 문화유산을 답사했던 구러시아공사관과 고종의 길, 구세군 중앙회관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서울 중구 정동 일대 근대 문화유산 답사 포스팅은 오늘이 세 번째이자 마지막입니다. 답사 순서는 구러시아공사관에서 고종의 길을 걷고 구세군 중앙회관까지 둘러보았습니다.

 

구러시아공사관

 

이화여고 심슨 기념관에서 캐나다 대사관 옆 샛길로 안내 표시판을 따라 앞으로 똑바로 조금 걸어가면 정동공원이 나오고 그 앞으로 언덕 위에 복원 공사 중인 3층 규모의 탑이 보입니다 

이곳이 바로 구러시아공사관이며, 명성황후 시해사건인 을미사변 후 일제에 신변 위협을 느낀 고종이 18962월 왕세자와 함께 가마를 타고 몰래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의 현장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러시아공사관은 정동 일대에서 제일 높은 정동공원 위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1890(고종 27)에 러시아인 사바틴이 설계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입니다. 당시에는 공사관 중 가장 높고 큰 규모였다고 하나 지금은 지하 1층과 지상 3층의 탑만이 남아 있습니다. 하얀 탑의 형태로 남아있지만 사실 탑은 아니고 공사관 건물의 일부인 전망탑이며, 6·25전쟁을 거치면서 공사관 대부분은 붕괴되고 전망탑 일부만 남았다가 1973년 보존공사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관파천 120주년을 맞아하여 2021년 구러시아공사관의 원형이 복원된다고 하니 왠지 기대 되기도 하네요. 지금 한창 공사중이었어요.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지 1년이 지난 1897, 어려운 시기를 견딘 고종은 아관파천을 끝내고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 후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의 탄생을 황제로서 하늘에 고합니다.

 

그리고 정동공원 좌측으로 한국 가톨릭 수도원 첫 자리인 정동수녀원이 있던 곳이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1888년 프랑스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이 러시아 공사관과 담을 맞댄 이곳 한옥 건물에서 우리나라에서 첫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고종의 길

 

 

구러시아공사관을 둘러보고 이어 정동 공원 오른쪽 언덕 위쪽으로 하여고종의 길이 복원되었다고 하여 걸어보았습니다. 

고종의 길은 20169월 복원이 시작되어 201810월 정식 개방됐으며, 옛 러시아 공사관이 있던 정동공원에서부터 덕수궁 서북쪽 구세군 서울 제일 교회 건너편 고종의 길 입구까지 이어지는 길로, 길이는 총 120m이다.

 

이 길은 고종이 1896년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서 덕수궁을 오갈 때 사용한 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 시기에 미국 공사관이 제작한 정동 지도에는 이 길을 왕의 길(King’s Road)로 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아관파천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일제에 신변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1896211일부터 약 1년간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을 말합니다. 

 

구세군 중앙회관

 

고종의 길을 따라 덕수궁 후문 쪽 고종의 길 입구로 나오면 왼쪽으로 길 건너에 구세군 서울 제일교회가 있어요. 그리고 그 교회 바로 왼편으로 구세군 사관학교라고 새겨진 구세군 중앙회관이 있습니다. 

영국인 윌리엄 부스에 의해 창시된 기독교 단체인 구세군은 전도와 사회봉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에 선교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힘겹던 시절, 어려운 사람들에게 쌀과 급식을 배급하는 등 구제 활동을 활발히 했습니다. 한국 구세군은 1908101일 영국에서 허가두 선교 사관이 서울에 도착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구세군중앙회관은 구세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입니다. 르네상스 양식의 이 건물은 1928년 캐나다와 미국에서 모인 헌금으로 구세군의 사관 양성 및 선교와 사회사업의 본부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건립 당시의 이름은 구세군사관학교였다고 합니다. 1985년까지 구세군 사업 활동을 위해 사용되었고, 현재는 구세군 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지난번 서울 중구 정동 일대 근대 문화유산을 답사 했던 구러시아공사관과 고공의 길, 구세군 중앙회관을 소개했습니다. 격변의 시대에 혼란과 상처의 시간을 겪으며 남겨진 흔적을 따라 걸어보는 것은 나름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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