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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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9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덕홍전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덕홍전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조선 궁궐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덕수궁 덕홍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덕수궁 덕홍전은 함녕전 옆 서쪽에 있는 전각이다. 덕홍전은 덕수궁의 건물 중에서 현대에 세운 시설물을 제외하고 가장 나중에 지었다. 원래 덕홍전 자리에는 한때 명성황후의 빈전과 혼전으로 쓰이던 경효전이 있었다. 그러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덕홍전은 함녕전을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할 때 일반 빈객들을 접견하기 위하여 경효전 자리에 1906년 건립한 후 1911년에 개조하였다. 주로 황제가 외국 사신이나 대신들을 만나던 접견실로 쓰였다. 이 전각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4칸이며 겹처마 팔작지붕의 단층이다. 측면.. 2021. 8. 30.
조선 궁궐 이야기 / 고종의 침전 덕수궁 함녕전 조선 궁궐 이야기 / 고종의 침전 덕수궁 함녕전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조선 궁궐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고종의 침전 덕수궁의 함녕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897년 건립된 함녕전은 고종황제가 일상생활을 하고 잠을 자던 침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04년 함녕전 온돌 수리공사 중 일어난 화재로 함녕전은 물론 덕수궁 내 전각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함녕전이 소실된 이후 고종은 중명전을 집무실 겸 침전으로 사용하였다. 함녕전은 이듬해인 1905년 8월에 중건하였다.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과 정전인 중화전 사이에 있다. 함녕전의 정문은 광명문이다. 덕홍전과는 한 영역에 있다. 함녕전은 1897년 당시 경복궁에 있던 만화당을 옮겨다 지었다. 1985.. 2021. 8. 24.
조선 궁궐 이야기 / 고종의 침전 덕수궁 함녕전 조선 궁궐 이야기 / 고종의 침전 덕수궁 함녕전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조선 궁궐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고종의 침전 덕수궁의 함녕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897년 건립된 함녕전은 고종황제가 일상생활을 하고 잠을 자던 침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04년 함녕전 온돌 수리공사 중 일어난 화재로 함녕전은 물론 덕수궁 내 전각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함녕전이 소실된 이후 고종은 중명전을 집무실 겸 침전으로 사용하였다. 함녕전은 이듬해인 1905년 8월에 중건하였다.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과 정전인 중화전 사이에 있다. 함녕전의 정문은 광명문이다. 덕홍전과는 한 영역에 있다. 함녕전은 1897년 당시 경복궁에 있던 만화당을 옮겨다 지었다. 1985.. 2021. 8. 24.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의 정전 중화전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의 정전 중화전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이다. 중요한 국가 의식을 거행하거나 조회를 열던 곳이다. 조선의 5대 궁궐 정전 중에서 유일하게 20세기에 창건되었으며, 처음부터 조선 왕궁의 정전이 아닌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세운 건물이다. 1897년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였으나, 협소하여 1902년 새로운 정전으로 중화전을 지었다. 본래는 2층으로 된 중층 건물이었으나 1904년 4월 화재로 소실된 후 현재의 단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중화전 앞뜰에 조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의 위치.. 2021. 8. 6.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금천교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 금천교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덕궁의 금천교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덕수궁의 대한문을 지나 건너게 되는 금천교는 1986년에 발굴 복원한 것이다. 덕수궁을 관통하도록 하여 만든 금천에 놓은 돌다리로 2개의 나란한 홍예교로 되어 있다. 조선의 모든 궁궐은 정전의 문 앞에 명당수가 흐르도록 하는 게 정석이었다. 배산임수의 풍수관에 따라 임금의 공간을 명당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이다. 배산임수란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땅을 말한다. 그리고 명당수가 흐르는 궁궐의 물길을 금천이라고 하였다. 이 금천은 정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임금이 지내는 거룩한 내부공간과 외부의 일상적인 공간을 구별해주는 경계.. 2021. 8. 3.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 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덕궁의 정문인 대한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한문은 덕수궁의 정문이다. 원래 덕수궁의 정문은 남쪽으로 난 인화문이었는데, 환구단 건립 등으로 덕수궁의 동쪽이 새로운 도심이 되자 동문인 대안문을 정문으로 삼았다. 1904년 덕수궁 화재로 1906년 중화전 등을 재건하면서 대안문을 대한문(大漢門)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70년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33m가량 서쪽으로 물러 앉게 되면서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때 문을 해체하여 옮기지 않고 통째로 덕수궁 쪽으로 밀어 당기는 식으로 옮겼다고 한다. 대한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다포계 우진각지붕으로 겹처마에 단청을 했으며.. 2021. 7. 28.
조선 궁궐 덕수궁 * 황실 교육기관 경운궁 양이재 조선 궁궐 덕수궁 * 황실 교육기관 경운궁 양이재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조선 궁궐 덕수궁을 이곳저곳 둘러보았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황실 교육기관이었던 경운궁 양이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경운궁 양이재는 대화재로 불탔던 경운궁(덕수궁)을 다시 지을 때 같이 지은 건물로 1905년에 완공되었다. 대한제국 황족과 귀족들의 근대식 교육을 담당했던 곳이었으며 현재는 대한성공회 주교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위치는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15에 있으며, 등록문화재 제267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운궁 건물인 양이재는 현재 대한성공회 소속으로 되어 있다. 경운궁 양이재는 1905년 처음 지어졌을 때만 해도 경운궁에 속했다. 그러다가 1912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가.. 2021. 7. 16.
정동 근대 역사길 탐방 * 덕수궁과 덕수궁 돌담길 정동 근대 역사길 탐방 * 덕수궁과 덕수궁 돌담길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서울 중구 덕수궁을 출발하여 정동 근대 역사길을 걸으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오늘은 먼저 그중에서 덕수궁과 덕수궁 돌담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덕수궁은 원래 명칭은 경운궁이었지만,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뒤 그곳에 살면서 명칭이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사적 제124호이다. 덕수궁은 조선 역사에서 파란만장했던 시기의 중심에 있었던 공간이기도 하다. 6만 1500㎡의 면적에 대한문, 중화문, 광명문과 중화전, 준명당, 석어당, 석조전, 함녕전, 즉조당 등의 전각이 남아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 갔다가 한성으로 돌아왔을 당시, 궁궐이 .. 2021. 6. 15.
서울 근대 문화유산 답사 - 덕수궁 출발, 정동 한바퀴 서울 근대 문화유산 답사 - 덕수궁 출발, 정동 한바퀴 어제는 서울 근대 문화유산 답사로 덕수궁을 출발하여 정동 한 바퀴를 돌았다. 서울 중구 정동에는 파란만장했던 격변의 시대를 견딘 근대 문화유산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고스란히 지키고 있었다. 혼란과 상처의 시간을 겪으며 남겨진 흔적을 따라 걸어보는 것은 나름 큰 의미가 있었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하차하여 2번 출구로 나와 덕수궁부터 둘러보았다. 이곳저곳 돌아본 곳이 많아서 오늘은 덕수궁과 덕수궁 돌담길, 정동극장과 중명전을 소개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또 연속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덕수궁 덕수궁은 원래 명칭은 경운궁이었지만,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뒤 이곳에 살면서 명칭을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2020.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