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각 문화유산 탐방 - 전옥서 터, 전봉준 동상, 황성신문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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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각 문화유산 탐방 - 전옥서 터, 전봉준 동상, 황성신문 터

by yeonjaei 2020.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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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각 문화유산 탐방 - 전옥서 터, 전봉준 동상, 황성신문

 

 

어제는 서울 종각 문화유산 탐방의 일환으로 전옥서 터와 전봉준 동상, 그리고 황성신문 터를 둘러보았습니다. 이곳들은 모두 종각 지하철역 부근에 있으며, 종각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만날 수 있습니다.

 

전옥서 터

 

지하철 종각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오른쪽으로 전옥서 터라는 표지석과 표지판이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죄인을 수감하였던 감옥으로 한말 항일의병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곳입니다.

 

전옥서는 형조에 속한 감옥으로, 죄인에 관한 사무를 관장했던 관서였습니다. 전옥서는 남자 옥사와 여자 옥사로 구분되어 있었고, 수감되는 죄수의 대부분은 상민이었습니다. 때에 따라 의금부나 육조, 왕실의 계보를 편찬하고 왕족의 허물을 살피던 관아였던 종부시, 사헌부 소속의 왕족이나 양반, 관리도 수감되었다고 합니다.

 

전옥서 터에서 약간 오른쪽에는 한국 천주교 순교 터이자 신앙 증거 터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표지석에는 이곳은 천주교 박해 시기에 많은 천주교인이 형조로 이송되어 심문을 받고,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전옥서에 수감되었던 곳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한국 천주교 순교 터이자 신앙 증거 터는 전옥서를 말하며, 그래서 전옥서 터 바로 옆에 이 표지석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1838년 이호영이 갇혀 있다가 순교하였고, 김대건 신부의 부친 김제준을 비롯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모진 옥살이 속에서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하였던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서울 천주교 순례길 코스이기도 합니다.

 

전봉준 동상 

 

전옥서 터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종각역 6번 출구와 5번 출구 사이에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이 있습니다. 이 동상은 2018424일 전봉준 장군 순국 123주년을 맞아 국민 성금과 서울시의 협조를 받아, 이곳 종로 네거리 전옥서 터에 녹두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동상으로 세웠다고 합니다.

 

전봉준(1855~1895) 조선의 농민 운동가이자 동학의 종교 지도자였으며, 동학 농민운동 당시 남접의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몸이 왜소하였기 때문에 흔히 녹두라 불렸고, 뒷날 녹두장군이란 별명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는 동학농민군 지도자로서 부패한 관리를 처단하고 시정개혁을 도모했다. 전라도 지방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동학의 조직 강화에 힘썼으며,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가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동학은 당시 천주교를 의미하던 서학에 대립하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으로, 동학의 기본 이념은 인간 평등사상에 기초한 인내천(人乃天)’으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의미이다. 

 

전봉준 동상 뒷면에 새겨진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학농민군의 함성은 1894년 이 강산을 뒤덮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지휘한 동학농민군은 부패한 벼슬아치를 몰아내고 폐정을 바로잡기 위해 봉기하였다. 농민통치기구인 집강소에서 개혁 활동을 펼치던 중 일본이 침략 음모를 꾸미자 이를 몰아내려고 전면 재봉기하였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이 주력인 진압군에게 패배한 뒤 서울 전옥서(한선부 중부 서린방)에 갇혔다. 그리고 권설재판소에서 사형판결을 내린 다음 날인 1895424일 새벽 2시에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한 등 동지들과 함께 교수형을 받았다.

이제 순국 123주년을 맞이하여 국민 성금을 모으고 서울시의 협조를 받아, 종로네거리 전옥서 터에 녹두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동상으로 세운다

 

2018424

사단법인 전봉준 장군 동상 건립 위원회

 

황성신문 터 

 

전봉준 동상에서 오른쪽으로 종각역 5번 출구 길가에는 황성신문 터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황성신문은 1898년 남궁억 등이 창건한 국한문 혼용의 애국 계몽 일간지로서 국권을 수호하고 국민을 계몽하였습니다.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장지연이 시일야방성대곡이란 통분 논설을 게재하였다가 정간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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