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의 시작점, 서울 종로구 안국 천도교 중앙총부 앞길 삼일대로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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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시작점, 서울 종로구 안국 천도교 중앙총부 앞길 삼일대로를 걷다

by yeonjaei 2020.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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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의 시작점, 서울 종로구 안국 천도교 중앙총부 앞길 삼일대로를 걷다

 

 

 

 

 

출발

 

 

 

오늘은 서울 종로 문화유산 투어의 일환으로 19193.1운동의 시작점, 서울 종로구 안국의 천도교 중앙총부 앞길 삼일대로를 걸었다. 시작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5번 출구로 나와 낙원상가 방향으로 출발하였다안국역 5번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오른쪽에 콘크리트 바닥에 박혀있는 표지석이 보인다. 동서남북 방향으로 북쪽으로는 3.1운동을 최초로 계획했던 중앙고보 숙직실, 동쪽으로는 창덕궁, 서쪽으로는 독립선언문을 인쇄했던 보성사 터, 남쪽으로는 독립선언문 배부 터라고 되어 있는데 독립선언문 배부터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삼일대로

 

그리고 몇 발짝 앞으로 걸어가면 서울에서의 3.1운동 시간표가 바닥에 새겨져 있다. 3.1운동 시간표를 읽어보며 따라가다 보면 삼일대로를 조성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간판이 보인다. 3.1운동은 삼일대로 일대에서 처음 시작하여 팔도로, 세계로 퍼져나갔다. 1919(기미년) 만세운동을 통해 한국인 새롭게 태어났다. 서울특별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 겨레의 거룩한 용기와 희생, 인류 평화와 독립을 외친 뜻을 기리고 또 현재화하기 위해 삼일대로를 새로 닦고 3천여 시민이 참여한 시민 공간을 만들었다고 그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노인복지센터와 운현궁

 

 

또 조금 걸어가다 보면 서울 노인복지 센터가 보이는데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서울미래유산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을 지정하는 제도로서, 서울시는 2013년부터 매년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미래에 전달할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근현대 유산을 선정하고 있다. 왼쪽으로는 운현궁이 보인다. 운현궁은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았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집이다. 이 집은 서운관이 있던 고개에서 유래된 지명을 따서 운현궁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건국 동맹 터

 

그리고 조금 더 가다 보면 길 왼쪽에 조선건국 동맹 터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조선건국 동맹은 1944810일 조국의 광복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자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단체이다. 중심 인물은 여운형, 조동호, 현우현, 황운, 이석구, 김진우 등이며 산하조직으로 조선 농민동맹을 두었다

 

 

천도교 중앙총부

(수운회관) 

 

조금 걸어가면 그 규모도 크고 높고 웅장한 천도교 중앙총부(수운회관)가 보인다. 천도교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자 제1대 교주인 수운 최제우(1824~1864)1860년에 세운 민족 종교인 동학을 1905년 제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1861~1922)가 개칭한 종교이다. 동학은 서학인 천주교에 상대되는 의미이며, 사람이 곧 하늘이요, 하늘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라는 인내천 천심즉인심 사상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천도교의 대표 기관은 천도교 중앙총부이며, 그 산하에는 각 지방에 교구 및 전교실이 있고 교구장을 중심으로 교인들의 교화 및 포덕이 이루어진다.

 

 

독립선언서 배부터

 

천도교 중앙총부 입구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입구 바로 오른쪽에 독립선언서 배부터라는 표지석과 간판이 보인다. 표지석과 간판에 적혀 있는 글을 소개하면 독립선언문 배부터는 3.1운동 독립 거사를 위해 천도교 대표 등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검토 배부하였던 곳이다. 인류 평등의 큰 뜻과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를 선언한 선언서에 담긴 가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에서부터 오늘날 헌법 전문에 이르기까지 머리글로 새겨 계승되어 왔다. 3.1독립선언서(기미독립선언서)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보성사(천도교 운영, 지금의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찍어낸 뒤 신축 중이던 천도교 대교당 마당에 갈무리해두었다가 종교계, 학생 대표들에게 미리 나눠 주었다.

 

 

시민 참여 이름 돌

 

독립선언서 배부터 간판 뒤편에는 시민 참여 이름 돌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삼일대로 시민 공간 사업에는 3천여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함께하였다. 서울시 자매도시인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교민들과 중국계, 일본계 미국인들을 포함하여 2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힘을 보탰다. 이 길 네 곳에 작은 시민공원을 만들고 돌을 골라 먼저 독립선언을 한 민족대표들과 한국과 중국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이름을 새겼다고 되어 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

 

천도교 중앙총부 입구에서 바로 앞을 바라보면 저 멀리 천도교 중앙대교당이 보인다. 이곳 마당이 보성사에서 인쇄한 3.1독립선언서(기미독립선언서)를 갈무리해두었던 곳이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의암 손병희의 주관하에 1918년에 시공하여 1921년에 완공된 천도교의 대교당이다. 이곳에서는 천도교의 종교의식 이외에 각종 정치집회, 예술공연, 강연회 등 일반 행사가 개최되었다. 독립운동 기금을 모으기 위하여 대교당 건축이란 명분을 내세워 19184월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이듬해 천도교가 3.1운동의 중심 단체로 활동하면서 건축비를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게 됨으로써 공사가 늦어졌다고 한다

 

 

천도교 3.1운동 마당

 

천도교 중앙총부 입구에서 낙원상가 방향으로 몇 발짝 가다가 오른쪽으로 바라보면 천도교 3.1운동 마당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에는 3.1운동은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 학생들이 함께 계획하고 참여하였다. 종교계는 한뜻으로 뭉쳤고 학생들 또한 이를 따랐다. 동학을 잇는 천도교는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선언서를 찍고 나누고 하는 일들에서 중심이었다. 또 이곳 대교당을 지을 때 쓸 비용을 덜어내 3.1운동 활동에 사용하는 등 3.1만세운동에서 지렛대 구실을 하였다. 덧붙여 천도교 대교당(1921년 준공)은 한때 종현성당(명동성당), 조선총독부 청사와 함께 경성 3대 건물로 꼽혔다고 적혀 있다

 

 

서북학회 터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낙원상가 방향으로 가다 보면 길바닥에 서북학회 터 방향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이고, 이곳에서 약 100여 미터 더 가다 보면 서북학회 터라는 표지석과 간판이 보인다. 서북학회는 대한제국 시대인 1908년에 국권 회복 운동을 위하여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도민이 조직한 애국 계몽단체였다. 1909년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자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운동으로 전환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나 1910년 강제 해산되었다. 그 후 이곳에는 한때 오성학교, 보성전문학교, 건국대학교 전신인 정치대학이 자리하였다. 보성전문학교가 이 건물을 사용할 때는 많은 학생들이 3.1운동에 참여하여 옥에 갇히거나 학교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오늘 서울 종로 문화유산 투어의 일환으로 19193.1운동의 시작점, 서울 종로구 안국의 천도교 중앙총부 앞길 삼일대로를 걸었는데 나름 보람 있는 투어였다. 이 길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작년에 조성하였다 하는데 늦게나마 다행이다. 개인적으로는 늦게 찾아온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도 3.1 독립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당시 바쁘게 움직였을 독립운동가와 학생들 대표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관심받는 삼일대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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