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가볼 만한 곳 * 독립운동의 산 교육장 용산 효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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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가볼 만한 곳 * 독립운동의 산 교육장 용산 효창공원

by yeonjaei 2020.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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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가볼 만한 곳 *

독립운동의 산 교육장 용산 효창공원

 

 

 

 

 

 

오늘은 서울 용산 가볼 만한 곳으로 독립운동의 산 교육장이라고 할 수 있는 효창공원을 찾았다. 효창공원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있는 시립 공원으로, 1981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애국지사들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조성되었다.

 

 

본래 효창공원은 조선 22대 정조대왕의 장남인 문효세자와 그의 생모인 의빈 성씨와 순조의 후궁 숙의 박 씨 및 영온 옹주의 묘가 있었던 곳이었으나 일제의 간교하에 사적의 격하를 위해 공원법을 제정하여 효창원을 효창공원으로 개칭하고, 일제 말기 세자 묘를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케 한 비운의 사적지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현재 공원 내에는 김구 선생의 묘역과 윤봉길·이봉창·백정기 등 삼의사의 묘, 안중근 의사의 가묘,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 등 임정 요인 3인의 묘가 있으며, 2002년에는 백범기념관이 건립되기도 했다. 또 공원 주변에는 효창 어린이공원과 효창 운동장이 있다. 또 의열사와 이봉창 의사 동상도 있다.

 

 

삼 의사의 묘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 

 

효창공원 정문을 들어가서 북쪽으로 30m 쯤 올라가면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삼 의사의 묘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삼의사는 194511월에 귀국한 김구선생이 다음에 6월에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골을 모시고 와, 그해 76일 효창공원 중심지(옛 문효세자 묘)에 국민장으로 봉헌 안장하였다. 삼 의사의 묘 왼편에는 19103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고자 마련한 빈 무덤이 있다.

 

 

백범김구기념관과 김구 선생의 묘역

 

 

백범김구기념관은 독립운동가인 백범 김구 선생(1876~1949)를 기념하기 위해서 1999430일 사단법인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가 창립되었으며,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전시실, 전시홀, 회의실, 영상실, 자료검색실, 자료실 등을 갖추고 20021022일 개관하였다. 기념관은 200812월에 백범기념관에서 백범김구기념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백범김구기념관은 김구 선생의 삶과 사상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고, 분단된 조국의 자주·민주·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며, 민족의 아름다운 문화를 발전 시켜 나가기 위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김구 선생의 묘역은 1949626일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이 민족통일의 한을 품고 흉탄에 쓰러지자 그해 75일 국민장으로 이곳에 모셔 안장하였으며, 그 후 이 일대가 독립운동에 앞장선 선열들의 묘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924년 중국에서 사망하신 부인 최근례 여사와 1999년 합장하였다.

 

 

임정 요인 묘역

 

 

임정요인의 묘역은 효창공원 정문으로 들어가서 바로 오른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나온다.

임정요인 묘역은 19489월에 중국 땅에서 순국하신 임시정부 의장 및 주석 이동녕 선생과 국무원 비서장 차리석 선생의 유해와 군무부장을 역임하고 환국 후 서거하신 조성환 선생을 모신 곳으로 199111월에 묘역 주변을 현재와 같이 조성하였다.

 

 

이봉창 의사 동상

 

 

이봉창 의사 동상은 효창공원의 정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정문에서 왼쪽으로 백범 김구기념관쪽으로 올라가면 볼 수 있다. 이봉창(1901~1932) 의사는 1932년 일본 천황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이다.

이봉창 의사는 서울 용산 문창보통학교를 졸업 후 용산역 전철수로 일하다가 한국인에 대한 차별대우에 저항하여 시작하고 일본에 건너가 노동에 종사하였다.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과 함께 일왕 폭살 계획을 세워, 193218일 동경 사쿠라다문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불행히도 명중시키지 못하고 실패하여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해 9월 의사는 일본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10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2세 나이에 순국하였다. 이 사건은 일본인에게 조선인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한 계기가 되었으며, 당시 중국 신문인 국민일보에서 의사의 애국적 기개를 칭송하였다고 한다.

이봉창 의사 기념사업회와 동상건립위원회는 동아일보사의 후원으로 의사의 위대한 애국 사상과 독립정신을 기리고자 광복 50주년과 의거 및 순국 63주년을 맞이하여 19951010일 이 동상을 세웠다.

 

 

의열사

 

 

의열사는 효창공원 내 묘역에 있는 이동녕, 김구, 조성환, 차리석,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의열사는 198811월 정부 주도하에 효창공원 정비공사 때 건립을 추진, 1990년에 11월에 의열사와 창열문을 완공해 준공하였고, 그 이듬해 이동녕, 김구, 조성환, 차리석,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7인의 영정과 위패를 모셨다.

7위 선열을 기리는 추모 행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60주년인 1979413일 합동 추모 제전을 지낸 이래 계속 있었으며, 2011년부터는 전통제례 방식을 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413)이나 환국일(1123) 즈음에 효창원 7위 선열 의열사 제전을 거행하고 있다.

그동안 의열사는 제한적으로 개방하였으나 후손들이 이곳에서 살아 숨 쉬는 역사를 생생하게 느끼고 애국애족의 정신을 기르도록 20165월부터 상시 개방하고 있다.

 

 

 

원효대사 동상

 

 

 

 

 

원효대사는 당나라로 유학 가던 길에 해골물 일화를 통해 득도한 신라의 승려. 661년 의상과 함께 당나라에 유학을 가기 위해 당항성으로 가는 중 어느 토굴에서 자다 목이 말라 바가지에 있던 물을 달게 마셨는데, 다음날 아침 보니 토굴이 아닌 무덤에서 해골에 고인 물을 마셨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알았다고 깨달은 뒤 유학을 포기했다. 불교뿐 아니라 유교와 도교, 법가사상 등에도 해박했으며,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후일 대학자가 된 설총을 낳았다. 현재는 원효대교와 원효로 등으로 이름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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