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의 정전 중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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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의 정전 중화전

by yeonjaei 2021.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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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궁궐 이야기 / 덕수궁의 정전 중화전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덕수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이다. 중요한 국가 의식을 거행하거나 조회를 열던 곳이다. 조선의 5대 궁궐 정전 중에서 유일하게 20세기에 창건되었으며, 처음부터 조선 왕궁의 정전이 아닌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세운 건물이다.

 

1897년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였으나, 협소하여 1902년 새로운 정전으로 중화전을 지었다. 본래는 2층으로 된 중층 건물이었으나 19044월 화재로 소실된 후 현재의 단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중화전 앞뜰에 조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의 위치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좌우에 있으며, 중화전의 정문으로 중화문이 있다. 특히 중화전은 중화문과 더불어 보물 제8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화전의 중화(中和)’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성정이라는 의미로, 중용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곳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으로는 1907(광무 11) 1월에 치러진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과 순정효황후의 결혼식과 19077월에 열린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하는 의식 등이 있었다.

 

중화전은 정면 5, 측면 4, 20칸이다. 2단으로 쌓은 넓은 월대 위에 높직한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건물 내외부 사이의 기둥 사이에는 분합문을 달아 언제나 여닫을 수 있게 하였다.

 

 

중화전은 처음부터 대한제국의 황궁 정전으로 지었기 때문에 답도에는 제후국을 상징하는 봉황이 아니라 황제국을 나타내는 용 2마리가 새겨져 있다. 또한 내부 천장에도 봉황이 아닌 용이 달려있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 고종이 승하한 이후, 일제는 1933년에 덕수궁을 공원화하면서 중화전 뜰의 박석을 걷고 잔디와 꽃을 심는 등 훼손했다. 8.15 광복 이후인 1980년대 말에 문화재관리국에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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