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성정각 왕세자의 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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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성정각 왕세자의 공부방

by yeonjaei 2021.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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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성정각 왕세자의 공부방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왕세자의 공부방인 창덕궁의 성정각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성정각은 희정당의 동남쪽에 있다. 창덕궁 후원으로 가는 넓은 길에 큰 건물인 중희당이 있었고 이 일대가 왕세자의 거처인 동궁이 있었다. 동궁에는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육각 누각인 삼삼와, 그 옆의 칠분서, 그리고 승화루는 복도로 연결되어 서고와 도서실로 사용되었다. 순조의 장남이 효명세자가 대리청정 때 주로 기거하면서 정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성정각은 왕세자가 거주하던 동궁의 전각으로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입구는 영현문으로 현인을 맞이하는 문의 뜻이다. 성정각의 성정은 공자의 유교 경전인 대학에서 성의(誠意)’, ‘정심(正心)’ 앞 글자를 따서 붙였다. '성심성의껏 바른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이다.

 

 

왕세자는 보통 4살 이후에 책봉이 되는데, 4세 이전에는 신분에 맞는 예절 등을 학습한다. 4살 이후에는 사서삼경 등을 통해 읽고 쓰기를 배운다. 세자는 20여 명의 스승을 통해 다양한 학문(음악, 미술, 의학 등)을 통해 임금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5일에 한 번씩 시험을 봐서 통약조불(cf.수우미양가)의 시험 성적을 통해 상을 받거나 벌을 받았다고 한다.

 

 

성정각은 자 형태이다. 정면 6, 측면 2칸 총 12칸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지었다. 용마루와 추녀마루, 내림마루는 기와를 쌓은 뒤 그 위에 용두와 취두를 올리고 잡상은 놓지 않았다.

이 전각은 대한제국 시기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한 후, 순종의 황태자였던 의민 태자가 일본에 유학 가기 전까지 여기서 머물렀다. 1917 창덕궁 내전 화재 때는 잠시 순종 황제 내외가 머물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궐내각사 구역에 있던 내의원이 성정각으로 옮겨 왔다. 현판에서 오른쪽에 보호성궁은 임금의 몸을 보호한다”. 라는 뜻이며, 왼쪽에 조화어약은 임금이 드시는 약을 조제한다”. 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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