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태그의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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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42

창경궁 흥화문, 백성과 소통의 장소 창경궁 흥화문, 백성과 소통의 장소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먼저 창경궁 흥화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흥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으로, 흥화문의 홍화(弘化)는‘조화를 넓힌다’, 즉 덕을 행하여 백성을 감화시키고 널리 떨친다는 뜻이다. 보물 제 384호이다. 창경궁의 정문이자 대문인 홍화문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광해군 때 재건되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차례 수리되었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동쪽을 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지붕은 앞쪽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으로 꾸몄다. 아래층은 기둥 사이마다 .. 2021. 6. 7.
조선 궁궐 탐방 * 창경궁 ** 조선 궁궐 탐방 * 창경궁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먼저 조선 궁궐 창경궁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창경궁은 성종 14년(1483)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추존왕)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 등 왕실 가족을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 터에 창건한 궁이다. 수강궁이란 세종 즉위년 1418년,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위해서 마련한 작은 궁이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연결되어 동궐이라는 하나의 궁역을 형성하면서,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 공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여기서 동궐이란 경복궁 동쪽의 궁궐이라 하여 창덕궁과 창경궁을 의미한다. 현재는 두 개의 궁궐로 구분되.. 2021. 6. 5.
창덕궁 검서청 규장각 부속 건물 ** 창덕궁 검서청 규장각 부속 건물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덕궁의 궐내각사 규장각의 부속 건물인 검서청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조선왕조의 중앙 관청은 궁궐 안에 설치된 궐내각사와 의정부, 육조 등과 같이 궁궐 밖애 설치된 궐외각사로 크게 구분되었다. 궁궐 안에 있는 궐내각사에는 왕실과 관련이 있는 여러 관청들이 설치되었다. 그 가운데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 정신문화를 담당하는 규장각,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던 예문관 등이 중심 시설이었다. 대부분의 궐내각사 건물들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가운데 흐르는 금천을 경계와 경관 요소로 삼았고 여러 관청들이 밀집되면서 미로와 같이 복잡.. 2021. 6. 3.
창덕궁 구선원전 어진 봉안 제사 ** 창덕궁 구선원전 어진 봉안 제사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덕궁 구선원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선원전은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초상화인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궁궐 밖에는 종묘가 있고 궁 안에는 선원전을 두었다. 원래 춘휘전이라 하였는데 숙종 21년에 선원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내부에는 역대 왕들 중 11명의 초상화를 모시고 있는데, 숙종 대 이후 왕들의 초상화를 모셨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새 선원전을 창덕궁 후원 깊숙한 곳에 건립하여 제사 기능을 그곳으로 옮기면서 선원전은 빈 곳이 되었고, 부속 건물은 2005년에 복원했다. 9칸의 몸체 앞 좌측에는 제물을 준비하던 진설청, 우측에는.. 2021. 6. 2.
창덕궁 규장각 정조의 혁신 정치 창덕궁 규장각 정조의 혁신 정치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덕궁의 궐내각사 규장각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조선왕조의 중앙 관청은 궁궐 안에 설치된 궐내각사와 의정부, 육조 등과 같이 궁궐 밖애 설치된 궐외각사로 크게 구분되었다. 궁궐 안에 있는 궐내각사에는 왕실과 관련이 있는 여러 관청들이 설치되었다. 그 가운데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 정신문화를 담당하는 규장각,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던 예문관 등이 중심 시설이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가운데 흐르는 금천을 경계와 경관 요소로 삼았고 여러 관청들이 밀집되면서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구성.. 2021. 5. 31.
창덕궁 궐내각사 옥당, 조선시대 홍문관 창덕궁 궐내각사 옥당, 조선시대 홍문관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덕궁의 궐내각사 옥당(홍문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조선왕조의 중앙 관청은 궁궐 안에 설치된 궐내각사와 궁궐 밖에 설치된 궐외각사로 크게 구분되는데, 궐외각사는 의정부, 육조, 충훈부, 의금부, 사헌부, 사간원, 사역원 등의 일반 관청이다. 궁궐 안에 있는 궐내각사에는 왕실과 관련이 있는 여러 관청들이 설치되었다. 그 가운데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 정신문화를 담당하는 규장각,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던 예문관 등이 중심 시설이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가운데 흐르는 금천을.. 2021. 5. 30.
창덕궁 궐내각사 탐방, 약방 내의원 창덕궁 궐내각사 탐방, 약방 내의원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덕궁의 궐내각사 약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궁궐 안애는 왕실과 관련이 있는 여러 관청들이 설치되었는데, 이를 궐내각사라 부른다. 그 가운데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 정신문화를 담당하는 규장각,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던 예문관 등이 중심 시설이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가운데 흐르는 금천을 경계와 경관 요소로 삼았고 여러 관청들이 밀집되면서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구성되었다. 조선왕조의 중앙 관청은 궁궐 안에 설치된 궐내각사와 궁궐 밖에 설치된 궐외각사로 크게 구분되는데, 궐외각사는 의정부, 육조, 충훈.. 2021. 5. 29.
창덕궁 수강재 덕혜옹주 생활 창덕궁 수강재 덕혜옹주 생활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덕궁 낙선재 일원의 수강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석복헌의 동쪽에 샛담을 사이에 두고 수강재가 있다. 샛담의 일각문으로 드나들 게 되었는데 시골집 별당처럼 아주 간소하고 진솔하게 생겼다. 수강재는 1785년(정조 9년)에 처음 지었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자경전을 지으면서 공사하고 남은 자갈과 벽돌을 모아 가짜 산을 만들었는데 이를 철거하고 지은 것이 수강재이다. 수강재는 이름에 ‘목숨 수’와 ‘편안할 강’자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왕실의 여인들 가운데 나이가 많은 사람이 살던 곳임을 알 수 있다. 헌종의 할머니 대왕대비인 순원왕후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수강재는 한단 반의 .. 2021. 5. 28.
창덕궁 석복헌 헌종 후궁 경빈 김씨의 처소 창덕궁 석복헌 헌종 후궁 경빈 김씨의 처소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창덕궁 석복헌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석복헌의 석복이란 복은 받아 누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낙선재 본채보다는 1년 늦은 1848년(헌종 14년)에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의 처소로 지었으며, 낙선재 동쪽에 위치하여 안사랑채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과 1년 뒤인 1849년(헌종 15년)에 헌종이 죽자 후궁인 경빈 김씨는 궁에서 나왔고 석복헌은 비었다고 한다. 석복헌은 왕비가 쓰던 곳과 비교하면 매우 소박하다. 이는 왕비와 후궁이 사용하는 곳은 위상의 차이로 매우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경빈 김씨는 후궁.. 2021. 5. 27.
창덕궁 낙선재 대한제국 황실가족 생활 창덕궁 낙선재 대한제국 황실가족 생활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창덕궁 낙선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낙선재 일원은 크게 왼쪽부터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의 건물이 있고, 그 뒤쪽으로 후원과 정자들이 있다. 이 일원은 가장 최근까지 대한제국 황실 가족들이 생활했던 곳이기도 하다. 낙선재는 왕의 서재 겸 사랑채이다. 조선 24대 왕인 헌종 임금은 자신과 효정왕후 사이에 자식이 없자 1847년 김재청의 딸을 경빈(후궁)으로 맞이하면서 중회당 동쪽에 낙선재를 지었다. 그 이듬해에는 석복현을 지어 낙선재와 나란히 두었다. 석복헌은 경빈 김씨의 처소인 생활공간이었다. 후궁을 위해 궁궐 안에 건물을 새로 마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지만, 헌종.. 2021. 5. 26.
창덕궁 경훈각 대조전의 부속 침소 창덕궁 경훈각 대조전의 부속 침소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대조전의 부속 침소인 창덕궁 경훈각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경훈각은 왕과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의 부속 침소이다. 위치는 대조전의 서북쪽에 있다. 건물 정면 기준으로 동쪽 8번째 칸에 달린 복도로 대조전과 통한다.정면 9간, 측면 4간의 단층 건물이며 초익공계의 몰익공 양식이다. 현재는 1층이지만 원래는 2층 건물이었다. 지붕도 선정전과 더불어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어 청기와를 얹고 있던 매우 화려한 모습이었다. 여러 왕과 왕비들이 2층을 여름에 더위를 피하고 한가롭게 쉬는 장소로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여러 차례 화재로 재건되었으며, 1917년 11월에 또 화재를 입어 1920년에 복.. 2021. 5. 25.
창덕궁 대조전 왕비의 생활 공간 창덕궁 대조전 왕비의 생활 공간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왕비의 생활공간인 창덕궁의 대조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창덕궁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곳이 바로 대조전이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정식 침전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보물 제816호로 창덕궁의 내전 중 가장 으뜸가는 건물이다. 원래는 대조전 주변을 수많은 부속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흥복헌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의 현장이다. 대조전은 정면 9칸, 측면 4칸의 팔각지붕 익공집이다. 임진왜란 때 등 여러 차례 대화재로 소실되었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1917년 불타 없어진 터에 1920년에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 지어 현재의 .. 2021. 5. 23.
창덕궁 성정각 왕세자의 공부방 창덕궁 성정각 왕세자의 공부방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왕세자의 공부방인 창덕궁의 성정각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성정각은 희정당의 동남쪽에 있다. 창덕궁 후원으로 가는 넓은 길에 큰 건물인 중희당이 있었고 이 일대가 왕세자의 거처인 동궁이 있었다. 동궁에는 많은 건물이 있었는데, 육각 누각인 삼삼와, 그 옆의 칠분서, 그리고 승화루는 복도로 연결되어 서고와 도서실로 사용되었다. 순조의 장남이 효명세자가 대리청정 때 주로 기거하면서 정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성정각은 왕세자가 거주하던 동궁의 전각으로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입구는 영현문으로 현인을 맞이하는 문의 뜻이다. 성정각의 성정은 공자의 유교 경전인 대학에서 ‘성의(誠意)’, ‘정심(.. 2021. 5. 22.
창덕궁 희정당 임금의 편전 창덕궁 희정당 임금의 편전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임금이 평소 거처하던 편전으로 사용된 창덕궁의 희정당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희정당은 인정전과 선정전 오른쪽에 있는 전각으로, 침전에서 편전으로 바뀌어 사용된 곳이다. 임금이 평소에 거처했던 곳이다. 본래 창덕궁의 편전은 본래 선정전이었는데, 이 건물은 내전에 속한 건물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이 건물을 편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보물 제8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11칸, 측면 4칸의 2익공식 팔작지붕 건물이다. 인정전이 창덕궁의 상징적인 으뜸 궁궐전각이라면 희정당은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1496년(연산 2)에 희정당으.. 2021. 5. 21.
창덕궁 선정전 왕의 공식 집무실 창덕궁 선정전 왕의 공식 집무실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임금의 집무실로 쓰인 창덕궁의 선정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선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바로 오른쪽에 있다. 현재 보물 제8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정전은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으로, 지형에 맞추어 정전인 인정전 동쪽에 세워졌다. 아침의 조정 회의, 업무보고, 국정세미나 격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다. 창건 당시에는 신정전을 조계청이라 불렀는데, 1461년(세조 7)에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는 뜻의 선정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등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47년(인조 25)에 인왕산 기슭에 있던 인.. 2021. 5. 20.
창덕궁 인정전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 창덕궁 인정전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창덕궁의 인정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두 번째 문인 진선문을 지나면 인정문이 나온다. 인정문을 들어서면 넓은 조정이 있고 앞으로 전각이 보인다. 인정전이다. 인정전은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즉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하지만 왕의 즉위식은 주로 인정문에서 거행되었고 왕이 된 후 인정전으로 들어왔다. 인정전 앞쪽으로 의식을 치르는 마당인 조정이 펼쳐져 있고, 뒤쪽으로는 북한산의 응봉으로 이어져 있다. 2단의 월대 위에 웅장한 중층 궁궐 전각으로 세.. 2021. 5. 19.
창덕궁 탐방 * 인정문 왕의 즉위식 거행 창덕궁 탐방 * 인정문 왕의 즉위식 거행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창덕궁의 인정전에 이르는 출입문인 인정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인정문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의 정문이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꺾어 금천교를 건넌 뒤 진선문을 지나 왼쪽으로 돌면 보인다. 이는 광화문에서 근정문까지 일직선인 경복궁과 차이가 있다. 경복궁은 예법에 따라 반듯하게 구획한 반면, 창덕궁은 자연 산세에 맞춰 지었기 때문이다. 인정문에서‘인정’은 맹자가 왕도정치를 강조하면서 언급했던 '인정(仁政)'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름 그대로 '어진(仁) 정치(政)를 바탕으로 훌륭한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1985년 1월 8일 대한민국의 .. 2021. 5. 17.
창덕궁 탐방 * 호위청, 상서원 창덕궁 탐방 * 호위청, 상서원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호위청과 상서원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창덕궁의 두 번째 문인 진선문을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호위청이 있었다는 호위청 현판이 보인다. 즉 창덕궁 진선문과 숙장문 사이의 남쪽 행각에 있으며 현재는 현판과 기둥만 있다. 호위청 맞은편에는 대규모 조회의식 또는 신하들의 하례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의 접견장소로 이용한 인정전으로 통하는 인정문이 있다. 호위청이 하는 일은 오늘날의 대통령 경호실과 빗대어 설명할 수 있는데, 왕과 왕실의 안위 를 지켜주는 관청이다. 인조가 폭군 광해군을 폐위하여 몰아내고 왕으로 올라간 사건이 인조 반정인데, 호위청은 인조가 설치했다. 하지만 사실 인조가 .. 2021. 5. 15.
창덕궁 탐방 * 창덕궁의 두 번째 문 진선문 창덕궁 탐방 * 창덕궁의 두 번째 문 진선문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창덕궁의 두 번째 문인 진선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진선문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를 건너면 나오는 중문(中門)이다. 돈화문과 인정문 사이에 다시 한번 문을 만들어 놓은 것은 창덕궁 정전인 인정전의 권위를 높이기 위함이다. 경복궁에서는 이 노릇을 하는 문이 흥례문이다. 1908년 탁지부 건축사무소에 의해 시행되었던 인정전 개수공사 때 헐렸던 것을 1996년 복원을 착수하여 둘레의 긴 회랑들도 같이 복원을 시작하여 1999년 완공하였다. 진선문은 임금님에게 바른말을 올린다는 뜻의 문이다. 진선문에는 억울한 일이 있는 백성이 와서 치면 왕이 듣고 억울한 사정을.. 2021. 5. 14.
창덕궁 탐방 - 규모와 품위를 함께 갖춘, 돈화문 창덕궁 탐방 - 규모와 품위를 함께 갖춘, 돈화문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규모와 품위를 함께 갖춘,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태종 12년에 처음 지어졌다. 창건 당시 창덕궁 앞에는 종묘가 자리 잡고 있어 궁의 진입로를 궁궐의 남서쪽에 세웠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 지금의 돈화문은 광해군 원년 1609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물 제383호로 지정되어 있다. 돈화문은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사용했고 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 ‘돈화’는 중용의 대덕돈화에서 가져온 말로 큰덕은 백성을 가르치어 감화시킴을 도탑게 한다는 뜻이다.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궁궐 대문.. 2021.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