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궁궐 이야기 * 창경궁 선인문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경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창경궁의 선인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선인문은 홍화문에서 이어진 궁 담장의 남쪽 곧 창경궁 동남쪽 담장에 있는 궁문이다. 이 문은 성종 때 처음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광해군 때 재건되지만 1857년(철종 8)에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문은 고종 연간에 재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이 문의 예전 이름은 서린문이며, 동궁의 정문으로 조정의 신하들이 출입하였다. 또한 세자가 궁 밖을 드나들 때, 특히 성균관 입학할 때 이용하였다.
선인문은 1층 목조 건물이다. 정면 2칸, 측면 2칸, 총 4칸이며 공포를 두지 않은 민도리 양식이다. 단청은 모루단청으로 칠했다. 현판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이며 오른쪽 칸에 걸려 있다. 문짝과 벽체는 전부 붉은 칠을 한 나무판이다.
현재 선인문 안쪽에 큰 자물쇠가 각 2칸의 문을 잠가 사용을 하지 못하는데 조선시대에도 궁문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이렇게 자물쇠로 잠가 외부로부터 침입을 막고 안에서는 임의적으로 궁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궁문이 한 번 잠기면 왕의 윤허가 없으면 열지 않았는데, 왕이 궁문을 열게 허락한 경우 임금의 왕명을 전하는 선전관원이 궁궐 문을 열고 닫는데 사용한 문표인 표신을 보여주고 일을 처리했다고 한다.
이 문은 조선 왕실에서 일어난 나쁜 사건들과 관련이 많이 있다. 사치와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있던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교동에 안치되었는데 이때 연산군이 창경궁을 나간 문이다.
또 소현세자빈 강씨의 이야기로, 환경전에서 남편 소현세자가 급사하게 되는데 그 죽은 영문도 잘 모른 채 인조가 자신의 수라에 독을 넣어 죽이려 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씌워 폐출시킨 후 이 문을 통해 궐 밖으로 쫓겨냈다.
또한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고 죽은 뒤 시신이 여기로 나갔다. 그리고 창경궁의 편전인 문정전 앞에서 부왕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감금된 사도세자 사건으로,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선인문 뒤로 옮겨진 뒤 8일 동안 굶주림과 한여름 더위에 신음하다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 또 철종 때 이 문이 불탔는데 하필 순원왕후의 국상을 치르던 중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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