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 문화유산 탐방 - 우암 송시열 사당 대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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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 문화유산 탐방 - 우암 송시열 사당 대로사

by yeonjaei 2020.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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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 문화유산 탐방 - 우암 송시열 사당 대로사 

 

 

 

얼마 전에 경기도 여주 문화유산 탐방으로 효종 대왕 영릉과 대로사, 명성황후 생가를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우암 송시열 사당 대로사에 대해 소개합니다. 

대로사는 경기도 여주시 하동에 있으며, 여주 시청에서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대로사 입구가 나왔다. 탐방은 대로사 사당 쪽을 먼저 둘러보고, 이어 대로사비 쪽으로 탐방하였다.

 

강한사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명신인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정조 9(1785) 정조가 여주시 능서면에 있는 영녕릉에 참배 오셨다가 김양행 등 유신에게 명하여 건립하게 하고 대로사라 사액하였으나, 고종 10(1873) 10월 강한사라 개칭하였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 평소 우암 송시열을 존경하던 정조가 정조 9(1785)에 송시열이 효종을 도운 것이 대로(大老)의 표본인 강태공과 같다 하여 사당 이름을 대로사라 했다. 여기서 대로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어진 노인을 의미한다. 

그 후 고종 8(1871)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철거할 때에 송시열을 모신 44개의 서원이 모두 헐렸으나 대로사만 강원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남게 되었다. 

대로사의 방향은 서쪽에 위치한 효중대왕릉(영릉)을 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우암 송시열은 인조 11(1633) 생원시에 합격하여 경릉참봉을 거쳐 봉림대군의 사부가 되었으며, 후일 효종의 총애를 받았다 

효종 9(1658) 이조판서에 승진되어 병자호란의 치욕을 갚기 위해 효종을 도와 북벌계획을 추진하기도 하였으나 효종이 사망하자 중지되었다. 

그 후 우의정을 거쳐 현종 13(1672) 좌의정이 되었다. 현종 15(1674)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로 일시 유배되었다가 남인이 실각하자 영중추부사로 기용되었으며, 숙종 91683년 봉조하가 되었고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서인 노론의 영수이자 사상적 지주로서 활동했다 

그 후 정계에서 은퇴하여 청주 화양동에서 은거하였으며 숙종 15(1689) 왕세자 경종 책봉 문제로 상소를 했다가 제주로 유배되었다.그 뒤 국문을 받기 위해 상경 도중 남인의 책동으로 정읍에서 사사되었다 

송시열은 조선왕조실록에 3,000회 이상 등장한 조선이 배출한 최고의 대학자로 이이의 학통을 계승해 일생을 주자학 연구에 몰두한 기호학파의 주류를 이루었다. 예론에 밝았으며 뛰어난 학식을 지녔고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시호는 문정으로 성균관 문묘에 모셔져 있다.

 

 

강한사의 구조는 사당, 강당(대로서원), 비각, 재실(추양재), 기타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어 간단하지만, 일반 향교나 서원과 달리 배치가 동서를 축으로 서쪽을 바라보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송시열이 영릉(효종의 능)을 바라보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출입문 역시 곁에서 영원히 함께하라는 의미로 장린문(長隣門)’이라 하였다 

 

대로사는 앞면 3, 옆면 2, 면적 14평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강당은 앞면 5, 옆면 3, 면적이 30평이다. 

그 밖의 건축물로는 송시열이 영릉의 잣나무들을 바라보며 애통해했다는 사실을 전하는 강당인 대로서원 첨백당, 대로서원은 대로사가 서원 기능을 하게 되면서 사당 앞에 강당용으로 세운 건물이다

 

 또 추양재는 대로사의 재실이자 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건물이다 

 

대로사비

 

대로사 외삼문으로 나오면 바로 대로사비가 보인다. 대로사비는 조선 후기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의 제사를 모시는 대로사의 내력을 적은 비로, 대로(大老)는 송시열의 존칭이다. 정조 11(1787) 송시열 탄생 180주년을 기념해 세웠으며, 정조 임금이 직접 비명과 비문을 짓고 직접 쓴 글씨를 정교하게 새겼다. 비문에 새긴 한 글자의 크기는 50cm로 상당히 큰 편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4호다.

비의 형태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석의 몸체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 모양의 갓돌을 얹은 모양이다. 앞면에 전서체로 대로사비라는 비의 이름을 새기고, 나머지 세 면에 비문을 새겼다. 받침돌과 갓돌은 화강암이고, 비의 몸체는 대리석이며 좋은 석재를 썼다 

비석의 총 높이는 3.77m이고, 비의 몸체 높이는 2.24m이며, 너비와 두께는 똑같이 66cm이다.

 

대로사는 6.25전쟁 등을 겪으며 훼손되었던 부분을 1982~1984년에 보수 작업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경기도 여주 문화유산 탐방으로 우암 송시열 사당 대로사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영릉을 바라보도록 대로사를 짓고 곁에서 영원히 함께하라는 의미로 쓰였다는 대로사 출입문장린문(長隣門)’이 특히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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