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 가볼 만한 곳 - 비운의 국모 명성황후 생가
본문 바로가기
여행축제방송연예

경기도 여주 가볼 만한 곳 - 비운의 국모 명성황후 생가

by yeonjaei 2020. 5. 14.
반응형

경기도 여주 가볼 만한 곳 - 비운의 국모 명성황후 생가 

 

 

얼마 전에 경기도 여주 가볼 만한 곳으로 효종 대왕 영릉, 대로사, 명성황후 생가를 갔었는데, 이번에는 명성황후 생가를 소개합니다. 

 

여주시에서 버스를 타고 점봉 초등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명성길을 따라 명성황후 생가로 걸어갔다.

 

 

점봉 초등학교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길을 건너면 바로 명성길 초입에 있는 명성황후상을 만날 수 있다. 

 

조선 제26대 고종황제의 비()인 명성황후는 1851(철종 2) 음력 925일 이곳에서 동쪽으로 1km 떨어진 여주시 명성로 71(명성황후 생가)에서 태어났다. 

 

이 동상은 현존하는 명성황후의 사진이나 표준 영정이 없기 때문에 황후의 얼굴 모습과 관련한 기존의 관련 문헌을 참고하여 동강 권오창 화백이 그린 진영을 바탕으로 궁중 예복을 갖춰 입은 청동 좌상으로 제작하였다고 한다.

 

절단 피라밋형의 좌대는 명성황후의 개혁 의지를 표현하고, 떠오르는 태양과 햇살을 받으며 비천하는 배면부조의 봉황은 개혁 정책 및 개화에 대한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20011226일 명성황후 생가 부지 내에 설치하였던 이 동상을 여주를 찾는 관광객의 편의 도모와 홍보를 위하여 2007531일 현재의 위치로 이전, 설치하였다.

 

명성황후 생가로 가는 명성길이다.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생가가 나오는데, 경기도 여주시 능현동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이다  

 

원래 이 집은 조선 숙종 13(1687)에 숙종의 장인이며,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묘막으로 건립되었는데 당시 건물로서 남아있는 것은 안채뿐이었으나 1975년과 1976년에 한 번 중수하였다가 1996년에는 행랑채와 사랑채, 초당 등을 복원하여 면모를 일신하였다. (출처 : 다음 백과 

 

이 집은 재목도 그리 크지 않고 간살도 넓지 않으나 부재의 형태와 결구법 등에서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곳은 조선 제26대 고종(1864~-1907) 황제의 황후로, 개화기에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하여 개방과 개혁을 추진하다가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일인(日人)에 의해 시해당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친 명성황후가 출생하여 8세까지 살았던 집이다.

 

위의 사진은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있는 운현궁이다. 이곳은 1866(고종3) 37일 민치록의 딸 명성황후를 고종의 왕비로 맞아들인다는 조칙이 반포되고, 고종과 명성황후가 가례를 치른 곳이다. 

 

또 운현궁은 고종이 태어나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던 곳이자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하며 나랏일을 보던 곳이기도 하다. 

 

명성황후는 나이 만 146, 비운의 국모로서의 삶아 시작되었다. 궁궐에 들어온 명성황후는 신정왕후, 효정왕후, 철인왕후 등 3명의 대비와 왕실의 어른은 물론 대원군과 부대부인에게도 효성을 다하고 수많은 궁녀를 대함에 있어서도 기품을 잃지 않아 궁중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또 명성황후는 조선조 말 개화기에 뛰어난 외교력으로 나라의 자주성을 지키면서 개방과 개혁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1895820(양력 108) 새벽 경복궁 내 건청궁 옥호루에서 일제에 의해 무참히 시해 당하는 을미사변 명성황후시해사건이 일어난다. 위 사진은 경복궁 내 건청궁 옥호루이다. 

 

일제는 수십 명의 일본인 낭인과 일본 수비대를 하수인으로 고용하여 고종과 명성황후의 침소인 건청궁에 난입하여 고종에게 미리 준비한 왕비의 폐출 조서에 서명을 강요하며 위협했다. 이어 궁내부대신 이경직을 살해한 뒤, 옥호루에서 명성황후를 무참하게 시해하고 시신을 화장하는 야만적인 행동을 저질렀다 

 

명성황후의 유해는 시해 직후 경험 많은 늙은 환관에 의해 추려져 태원전에 이빈하였다가 18967월 경운궁(덕수궁)의 경효전에 모셔두었다고 한다

 

그 후 명성황후의 유해는 1897(고종34) 1121, 한성부 동부 인창방 청량리(현 숭인원)에 처음 장사지냈으며, 1919116일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홍릉으로 옮겼다. 

 

원래 홍릉은 명성황후의 능으로 서울 청량리에 있었으나 고종의 승하로 국장할 때(191933) 경기도 남양주 현 위치로 옮기어 함께 합장하였다. 

 

45세의 나이에 참살된 명성황후는 1897년 대한제국 수립으로 고종이 황제에 오르면서 황후로 책봉됐다.

 

서울 중구 장충단 공원에 가면 장충단비가 세워져 있다.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궁내부대신 이경직과 시위 대장 홍계훈을 비롯한 많은 병사들이 일본인들에 대항하다 죽었다. 이에 고종황제는 1900(광무 4) 11월에 이들을 위하여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도록 장충단을 세웠는데 이때 비석도 함께 세웠다. 지금은 비석만 남아 있다.  

 

이상으로 경기도 여주 가볼 만한 곳으로 비운의 국모 명성황후 생가를 소개하였다. 명성황후의 어릴 적 모습과 황후로서의 고달팠던 삶이 대략 그려지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일제에 의해 나라가 힘없이 유린당하고 한 나라의 국모가 무참히 끔찍하게 시해당한 것에 마음이 찢어지듯 너무 좋지 않았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