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소문 문화유산 탐방 - 서소문 터, 이충순 자결 터, 이황 집터, 서울 연통부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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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소문 문화유산 탐방 - 서소문 터, 이충순 자결 터, 이황 집터, 서울 연통부지 등

by yeonjaei 2020.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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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소문 문화유산 탐방 - 서소문 터, 이충순 자결 터, 이황 집터, 서울 연통부지 등

 

어제는 서울 중구 서소문 문화유산 탐방의 일환으로 서소문 터와 시위병영터, 이충순 자결 터와 이황 집터,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 연통부지 등을 돌아보았다.

 

서소문 터

 

서소문 터는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에 있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 9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 걸어가면 중앙일보 주차장 모퉁이에 '서소문 터'라는 표지석이 있다 

서소문은 한양도성의 사소문 중 하나로, 서남쪽에 있어 서소문으로 불린 소의문이 있던 자리이다. 1396(태조 5) 건립될 당시에는 소덕문이라고 했으나 1744(영조 20) 소의문으로 바꿨다. 그러나 1914년 일제의 도시계획에 의해 부근의 성곽과 함께 완전히 철거되었고 지금은 사진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서소문은 오늘날 서소문 고가도로의 시작점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광희문과 더불어 시신을 성 밖으로 운반하던 통로로 사용되었다. 

 

서소문밖 네거리에는 한강으로 흐르는 만초천이 있었고 냇가를 건너는 흙다리가 있었으며 주변으로 취락이 형성되고 저잣거리가 발달하였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이곳은 조선 시대 후기 죄수들을 참형하여 효시하던 장소였으며, 참형장 옆 우물은 뚜껑을 늘 덮어 두었다가 망나니가 사람을 죽일 때 열고 칼을 씻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서소문 역사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천주교 박해 때마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순교하였고, 거룩한 순교를 기리는 현양탑이 세워져 있다.

 

시위병영터

 

시위병영 터는 서울 중구 서소문동 58-9에 있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 9번 출구로 나와 조금 걸어가면 서소문 국민은행 앞 벽 밑에 표지석이 있다. 서소문 터 표지석 얼마 못미처에 있다. 

시위병영터는 조선 후기에 임금의 호위를 위하여 조직된 시위대의 보병 제1연대 제1대대가 주둔하던 곳이다. 시위대는 대한제국 선포 이후 전투부대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19078월 일제의 강요에 의해 해산되었다. 시위대의 해산은 군인들의 항일 시위 투쟁이 벌이진 계기가 되었다.

 

이충순 자결 터

 

이충순 자결 터는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 88에 있다. 서소문 터 표지석이 있는 근처, 서소문 삼성생명 입구 좌측에 '이충순 자결 터'라는 표지석이 있다. 

이곳은 구한국군 시위대 참위 이충순(1877~1907)이 군대 강제 해산에 저항하여, 서소문에서 대일(對日) 시가전을 전개하다가 장렬히 자결 순국한 곳이다 

 

이충순은 19027월에 육군 보병 참위로 임관하였다. 1907년 정미7조약이 체결되고 군대마저 강제 해산되어 81일 시위대가 전격적으로 해산당하자 이를 거부하고 일본군과 접전중 크게 부상을 당하였다. 일본군에게 사로잡히게 될 위기에 처하자, 즉석에서 자결하여 체포당하는 수모를 받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황 집터

 

 

이황 집터는 서울 중구 서소문동 37에 있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 10번 출구로 나와면 한산 빌딩 앞 길가에 표지석이 있다. 이 집터는 조선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1501~1570)이 젊은 시절 서울에서 관직 생활을 할 때 살던 곳이다. 

이황은 조선 중기 성리학을 체계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공헌했으며, 주리론적 사상을 형성해 영남학파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사림의 종장으로 추앙받았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하여 1548년 단양군수가 되었다가 곧 풍기군수로 옮겼다. 1548(명종 3) 풍기군수 재임 중 전임군수 주세붕이 창설한 백운동서원에 편액, 서적, 학전을 내려줄 것을 청하여 실현했는데, 이것이 조선 시대 사액서원의 시초가 된 소수서원이다. 1560년 도산서당을 짓고 독서, 수양에 전념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 연통부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 연통부지는 서울 중구 서소문로 9길 14 동화약방의 옛 사옥 앞에 있다. 이곳은 서울 시청과 비슷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할의 서울 연통부가 자리 잡고 있었던 터이다. 

19193.1운동 직후인 413일 중국 상해에 수립 선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 연통부와 교통국을 은밀히 조직하여 국내외를 오가며 활약하였다.

 

그중 서울 연통부는 일제와 싸우면서 임정이 수립되어 활동하고 있음을 국민에게 알리고 나라 안의 각종 정보와 군자금을 임정에 보고 전달하였다. 그러나 1922년경 서울 연통부의 활동은 일제에 의해서 저지됨으로써 주춤해졌다. 

서울 연통부의 행정책임자는 이곳에 1897년 설립된 민족 기업인 동화약방 설립자의 아들인 민권이었는데, 독립운동 중 그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연통부의 기능이 약회되었다. 

또 이곳 순화동 5번지 일대는 원래 조선조 숙종대왕비 인현왕후가 태어난 곳이다. 이 지역을 수렛골 또는 차동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이 마을에 숙박 시설이 많아 관청의 수레들이 많이 모여든 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서울 중구 서소문 문화유산 탐방의 일환으로 서소문 터와 시위병영터, 이충순 자결 터와 이황 집터, 서울연통부지 등을 돌아보았다. 표지석 터만 덜렁 남아 그 흔적 마저 느낄 수 없어 마음은 좋지 않았다.

다음에는 이 근처에서 가까운 천주교 순교의 현장인 서소문 역사공원을 한번 둘러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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