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탐방 - 규모와 품위를 함께 갖춘, 돈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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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탐방 - 규모와 품위를 함께 갖춘, 돈화문

by yeonjaei 2021.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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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탐방 - 규모와 품위를 함께 갖춘, 돈화문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규모와 품위를 함께 갖춘,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태종 12년에 처음 지어졌다. 창건 당시 창덕궁 앞에는 종묘가 자리 잡고 있어 궁의 진입로를 궁궐의 남서쪽에 세웠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 지금의 돈화문은 광해군 원년 1609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물 제383호로 지정되어 있다.

 

돈화문은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사용했고 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 ‘돈화는 중용의 대덕돈화에서 가져온 말로 큰덕은 백성을 가르치어 감화시킴을 도탑게 한다는 뜻이다.

 

 

 

2층 누각형 목조건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며, 앞에 넓은 월대를 두어 궁궐 정문의 위엄을 갖추었다. 다른 궁궐문은 보통 3칸인데 반해 돈화문은 5칸으로 되어있다. 좌우 협칸을 벽으로 막아 실질적으로는 3칸 형식이다. 2층 문루에 종과 북을 달아 통행금지 시간에는 종을 울리고 해제 시간에는 북을 쳐 시각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는다.

 

돈화문이 처음부터 규모가 큰 문은 아니었는데 창덕궁이 이궁에서 정궁으로 쓰이다 보니 정궁에 맞게 큰 규모로 여러 차례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동궐도에는 돈화문의 지붕이 팔작지붕인데 지금 건물은 우진각 지붕인 걸 보면 개조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실록에 보면 광해군이 돈화문을 크게 확장하라는 어명을 내렸다고 하니 돈화문은 몇 번의 개조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여겨진다.

 

또 재미있는 것은 고종 27(1890)경에 자동차가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기둥 밑둥에 가로질렀던 문지방을 끼웠다 뺐다 할 수 있게 개조했다고 한다. 돈화문은 원래 넓은 계단이 있는 장대석의 기단 위에 세워져 멀리서도 우러러볼 수 있게 지었다고 한다. 이 문은 현재 남아있는 궁궐 정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가치가 있다.

 

 

 

돈화문을 들어서면 앞마당에 회화나무 8그루가 있는데 모두 천연기념물이다. 임진왜란 후 심은 것으로 추정되니 3~4백 년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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