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 탐방로 - 1·21 사태 소나무, 촛대바위, 말바위
본문 바로가기
여행축제방송연예

북악산 탐방로 - 1·21 사태 소나무, 촛대바위, 말바위

by yeonjaei 2020. 10. 29.
반응형

북악산 탐방로 - 1·21 사태 소나무, 촛대바위, 말바위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오늘은 얼마 전 북악산 탐방길에 만난 1·21 사태 소나무, 촛대바위와 말바위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북악산 한양도성

 

 

북악산 일대의 한양도성은 2006411단계로 홍련사 - 숙정문 - 촛대바위(1.1km)를 부분 개방하였고, 이후 200745일 와룡공원 - 숙정문 - 청운대 - 백악마루 - 창의문(4.3km)의 구간을 전면 개방하였다 

201945일부터는 국민이 편리하고 자유롭게 북악산 한양도성을 이용할 수 있도록 신분확인절차를 생략하고 개방시간을 확대하였다.

 

1·21 사태 소나무

 

 

백악마루에서 청운대로 내려가는 길에 1·21 사태 소나무가 있다. 수령이 200년 정도 된 나무인데 15발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 이 총탄 자국은 1968121, 청와대를 습격하려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원들과 우리 군경이 교전한 흔적이다.

 

1968121일 북한 124군부대 김신조 등 31명은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하여, 현 청운실버타운(청운동) 앞에서 경찰과 교전 후 북악산 및 인왕산 지역으로 도주하였다. 당시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 중 현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 되었고, 이후 이 소나무를 1·21사태 소나무라 부르고 있다.

 

무장 공비 일당은 당시 청와대 및 주변 시설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침투한 아군복장과 민간복 착용, 취객으로 위장하는 등 치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여 도발을 자행하였다.

 

121일 교전 후 14일간 작전결과 침투한 31명 중 1명 도주, 29명 사살, 1명 생포(김신조)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향토예비군이 창설('68.4.1.)되었다.

 

이곳에서 성 바깥을 바라보면 북한산과 백악 사이에 자리 잡은 평창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창동이라는 지명은 선혜청의 부속 창고인 평창(平倉)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하였다.

   

촛대바위

 

 

숙정문 북서쪽 약 400m 지점에는 촛대바위가 있는데, 촛대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은 촛대바위는 높이가 약 13m이다. 일제 강점기때 이 바위 상단부에 쇠말뚝을 박았었고, 광복 후 이 바위의 쇠말뚝을 제거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이름을 촛대바위라 정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쇠말뚝을 제거한 부분이 콘크리트 기중으로 마감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는 들어가는 입구를 막아놓은 상태로 가까이 가 볼 수 없었다. 지금은 출입통제중이라 가까이 가서 볼 수 없이 많이 아쉬웠다.

   

말바위

 

 

숙정문에서 말바위 안내소를 지나 삼청공원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길가에 있는 말바위를 만날 수 있다. 말바위는 삼청공원 안에 있는 바위로서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백악의 끝자락에 있는 바위여서 말()바위라 하였다고도 하고, 말을 타고 온 사람들이 산에 오르기 전에 이 바위에 말을 매어 두어 말()바위가 되었다고도 한다.

 

동쪽 능선을 따라 백악에 오를 때 갑자기 경사가 급해지는 지점이다. 그래서 말을 매어 두는 바위라는 설이 유력하다. 예전에는 바위에 벼락이 많이 친다고 하여 벼락 바위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