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투어] 종로 인사동을 걷다 - 충훈부 터, 해병 병단 결단식 터, 의학교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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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투어] 종로 인사동을 걷다 - 충훈부 터, 해병 병단 결단식 터, 의학교 터

by yeonjaei 2020.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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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투어] 종로 인사동을 걷다 - 충훈부 터, 해병병단 결단식 터, 의학교 터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오늘은 문화유산 투어의 일환으로 서울 종로 인사동에 나왔다가 인사동 입구에서 만난 '충훈부 터', '해병병단 결단식 터', 의학교 터를 소개합니다.

 

 

참고로 지금의 인사동 거리는 종로 2가에서부터 인사동을 지나 관훈동 북쪽의 안국동 사거리까지를 말합니다. 그러나 옛날에 인사동 길은 관훈동까지 올라가지 않고 종로 길에서 인사동 네거리, 즉 태화관길과 만나는 곳까지였다고 합니다.

 

옛날에 이 거리에는 고미술품과 고서적을 취급하는 상인과 화랑은 없었고 유명한 가구점과 병원, 그리고 규모가 큰 전통 한옥이 많았다고 합니다. 인사동의 명칭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인방(방이라 함은 고려와 조선 시대의 수도의 행정구역 명칭의 하나로 성안에 일정한 구획을 일컫는 것이다)과 대사동에서 가운데 글자인 인과 사를 따서 부른 것이며, 인사동이라는 명칭은 1915년부터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충훈부 터

안국동 네거리에서 인사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북인사 관광안내소 뒤)충훈부 터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충훈부는 국가의 공훈이 있는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고 공적을 보전하는 일을 맡아 보던 조선시대의 관아입니다.

 

처음에는 공신도감, 충훈사로 부르던 것을 1459년 세조 때 충훈부로 고쳤습니다. 6.25전쟁 당시 대부분 파손되었으며, 1953년 보신각을 복원할 때 그 기와 일부를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해병병단 결단식 터

인사동 입구 북인사 관광안내소 조금 앞에 해병 병단 결단식 터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조국 광복과 더불어 바다의 애착과 관심을 가진 손원일 (초대 해군 참모 총장)을 비롯한 겨례의 선각자 70명이 "우리의 바다는 우리가 지킨다"는 신념과 의지로 19451111일 이곳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모체인 해병 병단 절단식을 거행하였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해군 창설 59주년을 맞이하여 20041111일 해군본부에서 이곳에 표지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의학교 터

 

인사동 입구에서 종로경찰서 방향으로 걸어가면 종로경찰서 입구 왼쪽으로 의학교라는 표지석이 보입니다.

의학교는 1899년 대한제국에서 김홍집의 집에 설립한 최초의 근대의학 교육기관으로 졸업생들에게 면허증을 발급하였습니다. 1907년 대한의원 교육부로 개편되었다고 합니다.

 

벽에 걸린 감성의 좋은 시

 

서울 종로 경찰서에서 창덕궁 방향으로 길을 걷다가 벽에 새겨진 언제 읽어도 좋은 감성의 시가 있어 소개합니다.

도점 / 김시습(1435~1493)

아이는 잠자리 잡고 노인은 울타리를 고치는데

작은 시내 봄 물에는 물새가 벽을 감는다.

청산이 끊어진 곳 돌아 갈 길은 먼 데

등나무 한가지 꺾어 비스듬히 메고 가는구나.

 

서시 / 윤동주(1917~1945)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산거 / 이인로(1152~1220)

봄은 같지만 꽃은 아직 피어 있고

하늘은 개었지만 골짜기는 절로 어둡다.

대낮에 두견새 우는 것을 보니

비로소 깨닫겠도다 내 사는 곳 깊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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