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답사] 구리 동구릉 인조의 비 장렬왕후의 능, ‘휘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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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답사] 구리 동구릉 인조의 비 장렬왕후의 능, ‘휘릉’

by yeonjaei 2022.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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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답사] 구리 동구릉 인조의 비 장렬왕후의 능, ‘휘릉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며칠 전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구리 동구릉을 답사하였는데, 오늘은 장렬왕후의 능인 휘릉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구리 동구릉은 동쪽에 있는 9기의 능이라는 뜻으로, 조선 왕실 최대규모의 왕릉군이다. 구리시 인창동 검암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9개의 능에 17()에 달하는 조선의 왕과 왕비 유택이 있는 가족묘다. 총 면적이 1915,890제곱미터나 된다.

 

동구릉은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다. 1408년 태조의 왕릉이 자리하고 건원릉이라 이름한 뒤, 1855(철종 6) 익종(翼宗)의 능인 수릉이 9번째로 조성되어 동구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1. 徽陵(인조의 비 장렬왕후의 능)의 개요

 

◎ 위치 :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 능의 형식 : 단릉

◎ 능의 조성 : 1688(숙종 14)

 

 

2. 능의 구성

 

휘릉은 조선 16대 인조의 두 번째 왕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이다. 단릉 형식으로 봉분에는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난간석에는 십이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하였다.

 

능침 주변의 석양과 석호는 아담한 크기에 다리가 짧아 배가 바닥에 거의 닿을 정도이다. 혼유석을 받치고 있는 고석은 5개로 배치하였다.

 

조선 전기 왕릉(건원릉~헌릉)의 고석은 모두 5개였다가 세종의 영릉 이후에는 4개로 줄었는데, 휘릉에 와서 다시 초기의 형식을 따르게 되었다. 이는 건원릉의 예를 잠깐 따른 것으로, 휘릉 이후의 왕릉에는 다시 고석을 4개씩 배치하였다.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홍살문 등이 배치되었다. 휘릉 정자각은 다른 왕릉의 정자각과 달리 정전의 양 옆에 익랑을 추가하여 웅장함을 더하였다.

 

3. 능의 역사

 

1688(숙종 14)에 장렬왕후 조씨가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4. 장렬왕후(莊烈王后) 이야기

 

인조의 두 번째 왕비 장렬왕후 조씨(1624~ 1688)는 본관이 양주인 한원부원군 조창원과 완산부부인 최씨의 딸로 1624(인조 2)에 직산현(충남 천안) 관아에서 태어났다.

 

1635년에 인조의 첫 번째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1638(인조 16)에 인조의 두 번째 왕비로 책봉되었다.

 

1649년에 인조가 승하하고 효종이 즉위하자 자의왕대비가 되었으며, 효종, 현종, 숙종 대에까지 살아 왕실의 어른으로 지냈다. 그 후 1688(숙종 14)에 창경궁 내반원에서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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