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소문 역사 탐방 -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 서소문 역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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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소문 역사 탐방 -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 서소문 역사공원

by yeonjaei 2020.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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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소문 역사 탐방 -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 서소문 역사공원

   

어제는 서울 중구 서소문 역사 탐방으로, 한국 최대의 순교 성지인 서소문 역사공원을 찾았다. 서소문 역사공원은 서울특별시 중구 의주로216-4에 있으며,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7번 출구로 나와 약 10여 분 걸어갔다.

 

서소문 역사공원

 

서소문 역사공원은 현재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나, 원래는 서소문 밖 네거리 처형지'로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와 구한말 서소문 전투의 군인들 등 사회개혁 세력들뿐만 아니라,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특히 이곳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 성지는 천주교 평신도가 많이 순교한 평신도의 성지다. 네거리 참터에서 순교한 이들 중에서 이름이 밝혀진 이는 모두 아흔여덟 명이다. 그중 44명이 성인이 되어 국내 최대의 천주교 성지로도 자리 잡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대표적인 평신도 지도자였던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강완숙 골롬바가 순교하였고, 북경에서 신앙을 접목해 온 이승훈 베드로도 서소문밖에서 순교하였다.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하여 1839년 기해박해 때에 마흔 한 명의 순교 성인과 1866년 병인박해 때에 세 명의 성인이 합하여 모두 마흔네 명의 성인이 순교하였다. 그 밖에 수많은 이들이 박해 때마다 서소문 밖 네거리 참터에서 순교하였다.

 

서소문은 아현과 남대문 밖의 칠패 시장으로 통하던 문으로 일찍부터 사람들이 붐비던 곳이었다. 조선 시대의 사형집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어 범죄를 예방하려는 목적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서 행해졌으며, 서소문 밖도 이러한 이유에서 1416(태종 16)에 서울의 주요한 형장으로 지정되었다 

이곳 형장의 위치는 서소문 밖의 비탈진 언덕길 아래, 즉 현재의 서소문 역사공원 옆에 있던 이교(나무로 다리를 놓고 흙으로 덮어 흙다리라고도 함)의 남쪽 백사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참고로 서소문은 한양도성의 사소문 중 하나로, 서남쪽에 있어 서소문으로 불린 소의문이 있던 자리이다. 1396(태조 5) 건립 당시에는 소덕문이라고 했으나 1744(영조 20) 소의문으로 바꿨다. 그러나 1914년 일제에 의해 부근의 성곽과 함께 완전히 철거되었다.

 

순교자 현양탑

 

 

서소문 역사공원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면 천주교 순교자 현양탑이 세워져 있다. 1984103위 성인 선포를 기념하여 서소문 공원 안에 순교자 현양탑을 세웠으나, 공원 단장 공사로 철거되어 중림동 성당으로 이전하였고, 현재의 현양탑은 1999526일 축성식을 가졌다. 

이 현양탑은 높이 15m의 주탑과 13m의 좌우 대칭탑 등 3개의 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탑 기단 위는 유리로 막아 물이 흐르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박해와 죽음의 상징인 칼과 생명의 상징인 물을 대비시킨 것이다. 주탑 앞부분에는 순교의 참상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을 붙였다.

 

서소문과 만초천 이야기

 

 

서소문은 오늘날 서소문 고가도로의 시작점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광희문과 더불어 시신을 성 밖으로 운반하던 통로로 사용되었다. 

서소문밖 네거리에는 한강으로 흐르는 만초천이 있었고 냇가를 건너는 이교(흙다리)가 있었으며 주변으로 취락이 형성되고 저잣거리가 발달하였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이곳은 죄수들을 참형하여 효시하던 장소였다. 

만초천은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무악재에서 발원하여 서대문 사거리 ~ 서울역 ~ 원효로를 거쳐 한강으로 흐르는 약 7.7km의 만초( 덩굴이 무성한 풀)가 무성한 물길로 동국여지비고에 만초천으로 기록되었으며, 만초천을 따라 미나리골, 조개, 칠패, 청파 등의 추락이 발달하였다.1960년대 청파로 일대 도로 확장과 1967년 복개가 시작되어, 현재는 그 물줄기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만초천을 건너는 흙다리(이교)가 있었으며 헌다리라고도 불렀다. 서대문 고가도로 쪽 공원 진입부 바닥에 포장 패턴을 달리하여 흙다리의 느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고 있다.

 

 

이것은 두께 우물터이다. 우물이 크고 깊으며 물이 많이 나서 늘 흘러내려 한 번도 품어 보지 못하였다 하는데, 우물의 뚜껑을 늘 덮어 두고 망나니가 사람을 죽일 때에나 뚜껑을 열고 칼을 씻었다고 한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이곳 지상에 서소문 역사공원이 있다면 지하에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있다. 2013년부터 서울특별시 중구에서 지하4 ~지상 1층의 전시기념관과 추모공간이 있는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하여 20196월부터 일반시민에게 개방하고 있다 

2018914일 교황청에서는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가 포함된 천주교 서울 순례길을 아시아 최초 국제 공식 순례지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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