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석복헌 헌종 후궁 경빈 김씨의 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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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석복헌 헌종 후궁 경빈 김씨의 처소

by yeonjaei 2021.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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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석복헌  헌종 후궁 경빈 김씨의 처소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창덕궁 석복헌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석복헌의 석복이란 복은 받아 누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낙선재 본채보다는 1년 늦은 1848년(헌종 14)에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의 처소로 지었으며, 낙선재 동쪽에 위치하여 안사랑채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과 1년 뒤인 1849(헌종 15)에 헌종이 죽자 후궁인 경빈 김씨는 궁에서 나왔고 석복헌은 비었다고 한다.

 

석복헌은 왕비가 쓰던 곳과 비교하면 매우 소박하다. 이는 왕비와 후궁이 사용하는 곳은 위상의 차이로 매우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경빈 김씨는 후궁이었지만, 헌종의 사랑을 많이 받아 왕비 못지않은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정면 6, 측면 2칸으로 장대석 기단 2단을 놓고 그 앞에 2단짜리 계단을 2개 놓은 뒤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뜰은자 형 평면으로 되어있으며 본채와 행랑채가 서로 붙어있다.

 

석복헌은 여러 문의 창살에서 여성의 공간임을 알 수 있다. 또 안방에서 행랑채로 내려가면서 높이가 낮아지는 데, 이는 그 방주인의 신분을 나타낸 것이다. 낙선재와 마찬가지로 난간과 창호의 무늬가 제각기 다 다르다. 쪽마루가에 난간을 해 놓은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단종이 마지막에 이곳에 머물다가 영월로 유배를 떠났으며 세조가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1917 창덕궁 대조전이 화재로 불타자 순종 황제와 순종 황제의 비 순정효황후가 잠시 석복헌을 침전으로 사용했다.

 

순정효황후께서는 광복과 한국전쟁 속에서도 석복헌을 떠나지 않고 꿋꿋하게 지켰다고 하며 1966년까지 기거하시다가 196623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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