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가 볼 만한 곳 * 만해 한용운과 심우장
본문 바로가기
여행축제방송연예

성북동 가 볼 만한 곳 * 만해 한용운과 심우장

by yeonjaei 2021. 5. 16.
반응형

성북동 가 볼 만한 곳 * 만해 한용운과 심우장

 

 

안녕하세요. 즐거운 하루되세요~~^^. 얼마 전 서울 성북구 성북동 일대를 둘러보았는데 심우장도 들렀습니다. 오늘은 만해 한용운과 심우장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심우장의 위치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2924에 있다. 198575일 서울시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7호 지정되었고, 201948일 사적 제550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심우장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독립운동가이자 님의 침묵의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건립하고 1933년부터 1944년 입적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동쪽으로 난 대문을 들어가면 북쪽으로 향한 기와집인 심우장과 관리소, 그리고 만해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 등이 있다.

 

 

한용운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본명은 정옥이다. 용운은 법명이며 만해는 법호이다. 만해는 1919년 승려 백용성 등과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 발기인 33인 중의 한 분으로 참가하여 3·1독립선언문의 공약 삼장을 집필한 분으로 유명하다.

 

심우장이 있는 성북동은 원래 성밖 마을 북장골, 한적한 동네였다. 만해는 3·1운동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나와 성북동 골짜기 셋방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승려 벽산 김적음이 자신의 초당을 지으려고 준비한 땅 52평을 내어주자 조선일보사 사장 방응모 등 몇몇 유지들의 도움으로 땅을 더 사서 집을 짓고 '심우장'이라고 하였다. 이 집은 당시의 여느 집과는 다르게 검소하고 소박한 외향을 보여 준다.

 

심우장은 총 112.99평의 대지 위에 17.8평의 건평규모로 단층 팔작 기와지붕이다. 집의 구조는 정면 4간 측면 2간으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한 형태이다. 우측 서재로 쓰던 우측 방에는 심우장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특히 한용운이 심우장에서 기거하던 1930년대 중반 이후는 일본 제국주의의 극성기로 독립운동에 대한 강한 탄압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따라서 심우장은 남향을 선호하는 한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북향집인데 독립운동가였던 그가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므로 이를 거부하고 반대편 산비탈의 북향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제에 저항하는 삶을 일관했던 한용운은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광복을 1년여 앞둔 1944629일 심우장에서 입적, 생애를 마쳤다.

 

심우장(尋牛莊)이란 명칭은 선종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용운 선생이 쓰던 방에는 그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만해가 죽은 뒤에도 외동딸 한영숙이 살았는데 일본 대사관저가 이 곳 건너편에 자리잡자 명륜동으로 이사를 했고 심우장은 만해의 사상연구소로 사용하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