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탐방 * 호위청, 상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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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탐방 * 호위청, 상서원

by yeonjaei 2021.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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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탐방 * 호위청, 상서원

 

 

안녕하세요. 얼마 전 역사탐방의 일환으로 창덕궁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호위청과 상서원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창덕궁의 두 번째 문인 진선문을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호위청이 있었다는 호위청 현판이 보인다. 창덕궁 진선문과 숙장문 사이의 남쪽 행각에 있으며 현재는 현판과 기둥만 있다. 호위청 맞은편에는 대규모 조회의식 또는 신하들의 하례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의 접견장소로 이용한 인정전으로 통하는 인정문이 있다.

 

 

호위청이 하는 일은 오늘날의 대통령 경호실과 빗대어 설명할 수 있는데, 왕과 왕실의 안위 를 지켜주는 관청이다. 인조가 폭군 광해군을 폐위하여 몰아내고 왕으로 올라간 사건이 인조 반정인데, 호위청은 인조가 설치했다. 하지만 사실 인조가 설치하고자 한 것 보다는 인조 밑에서 광해군을 몰아냈던 신하들이 왕권 강화라는 목적으로 설치를 주장하여 만들었지만, 그 이면에는 왕권을 견제하기 위한 신하들의 목적이 있었다.

 

호위청에는 대장 1·별장 3명이 근무했으며 군관 350명을 거느렸다. 호위별장 1명이 호위군관 30명을 이끌고 경비업무에 투입되었다. 호위청 대장은 통상 임금의 장인어른이 맡았다. 호위청이 왕과 왕실의 안위를 위해 만들었지만 혹시모를 역적이나 반란을 대비하여 장인어른을 호위청의 대장으로 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호위청은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다른 나라와의 경계에 있어서 전쟁이나 싸움으로부터 남달랐던 함경도 출신의 인재를 등용하였다.

 

 

호위청 왼쪽으로 상서원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상서원은 옥새를 비롯하여 임금의 명령을 상징하는 각종 물건들을 관리하던 관청이다. 절월(節鉞; 임금을 상징하는 도끼), 병부(兵符; 군대를 동원하는 표지로 쓰던 나무패), 순패(巡牌; 궁궐이나 도성 안팎을 순찰할 때 차고 다니던 패), 마패(馬牌) 등을 관리하였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인정문 맞은 편 행각에 호위청과 나란히 있는데, 현재 현판과 기둥만 있다.

 

마패는 말이 그려진 신분증과 같은 것인데 어사들이 들고 다니는 신분증 같은 것이다. 마패에는 말이 그려져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교통수단이 말이었고 멀리 가려면 지방 곳곳에 들려서 말을 바꿔타거나 숙박을 해야 했다. 마패의 말의 수는 말을 빌릴 수 있는 수를 의미한다.

 

어사 제도는 원래 중국에서 들어온 제도이다. 암행이라는 것은 몰래 간다는 의미로, 조선시대 어사는 왕이 직접 선발하였다. 왜냐하면 임금 자신이 지방까지 직접 가지 못하기에 대신 가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어사는 우리가 아는 나쁜 탐관오리를 벌 주는 것뿐만 아니라 지방의 효자나 효녀들을 포상하기도 하였고, 흉년이 든 지방에는 대신 곡식을 나눠주는 일도 하였다 또한 억울한 죄를 뒤집에 쓴 사람이 없는지 죄인들의 형량도 다시 봐주는 일도 하였다. 대표 인물은 암행어사 박문수이다.

 

옥새는 임금님의 명령을 담은 내부문서나 외교문서에 찍는 도장이다. 옥으로 제작한 것을 옥새라고 하였고, 금으로 제작한 것을 금보(金寶) 혹은 금인(金印)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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