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광화문 광장 조선 시대의 주작대로, 육조거리와 각 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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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광화문 광장 조선 시대의 주작대로, 육조거리와 각 관청

by yeonjaei 2020.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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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광화문 광장 조선 시대의 주작대로, 육조거리와 각 관청

 

 

안녕하세요!

어제는 광화문 광장에 나갔다가 세종문화회관 앞 도로를 걷는데, ‘육조거리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잠시 살펴보고 또 걷는데, 길바닥에도 육조거리의 모습이 새겨 있었고, 군데군데 조선 시대 육조거리에 있었던 관청들에 대한 설명이 얇은 철판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육조거리 등에 대해 관심도 있었고, 호기심도 발동하여 광화문 광장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았고, 조선 시대 육조거리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는 세종로 쪽에 있는 해치마당도 둘러보았습니다.

 

 

그래서 광화문 광장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 시대 주작대로, 육조거리와 육조거리에 있었던 각 관청과 임무를 소개하겠습니다.

 

조선 시대의 주작대로, 육조거리

광화문 거리는 1395년 경복궁 건립과 함께 전조, 즉 관가로 구성되었다. 경복궁 정문 광화문에서 황토마루(지금의 세종로 네거리)까지 길이 약 600m, 너비 약 58m의 거리 양편에는 의정부를 비롯하여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 국가의 주요 기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이 길을 '육조거리'라고 불렀다.

 

육조거리는 궁궐의 어도와 연결되는 어가인 동시에 조선 왕조의 위엄을 보여주는 조선의 '주작대로'였다.

육조거리라는 이름은 광화문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오른편에 의정부, 이조, 한성부, 호조가 자리하고 있었고, 왼편에는 예조, 중추부, 사헌부, 병조, 형조, 공조, 사역원 등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육조거리에 있는 각 관청은 행랑과 출입문, 업무를 보던 건물, 연못과 종자의 공통된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육조거리에 대한 발굴조사는 광화문광장 조성 사업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서울시와 서울시 도시기반 시설 본부의 의뢰로 대림산업의 지원을 받아 200895일부터 102(1), 200956일부터 615일까지 ()한강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를 실시하였다.

수선 전도(1861)19세기에 김정호가 제작한 목판 지도로써, 현재 광화문 광장의 원형이 형성된 것은 1395년 경복궁 건립 때였다.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으로부터 황토마루(지금의 세종로 네거리)까지의 대로 양쪽으로는 의정부, 육조, 한성부 등 주요 관아들이 자리 잡아 '육조거리'라고 불렸다.

 

 

한양도(1822)는 간결한 선으로 도성과 도성 내 주요 기관과 거리를 그렸다. <한양도>는 위백규(1717~1798)1770년에 저술한 환영지안에 있는 여러 지도 중의 하나이다.

육조거리에 있었던 각 관청과 임무

 

조선 시대 육조거리에 있던 각 관청과 임무는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을 바라보고 오른쪽 위에서 밑으로, 그리고 왼쪽 위에서 밑으로 전시되어 있는 순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의정부 터

의정부는 조선 왕조의 최고위 관청이었다. 의정부의 고위 관원은 왕, 육조 판서와 함께 나라의 주요한 일을 논의하고 결정하였다.

 

왕이나 비변사, 육조, 삼사 등 다른 관청과의 관계 속에서 그 권한의 크기가 시기마다 달랐지만, 의정부와 영의정은 모든 관청과 관원을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조 터

 

이조는 육조를 대표하는 관청이었다. 문관의 선발과 근무 평가, 증직, 봉작, 시호를 내려 주는 등의 인사 업무를 담당하였다.

 

책임자인 판서가 참판과 참의의 도움을 받아 주요 사항을 결정하였다. 이조의 낭청은 삼사 관원의 추천권을 가지고 있어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성부 터

 

한성부는 수도 한양의 행정을 담당하는 관청이었다. 오늘날 서울시와 비슷한 업무를 담당하였다. 경제 범죄를 처벌하는 등의 사법 기능도 가지고 있어서 형조, 사헌부와 함께 법을 담당하는 3대 관청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그 역할이 확장되어 전국의 토지, 가옥과 관련한 소송, 전국의 호적을 관장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호조 터

 

호조는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는 관청이었다. 전국의 호구를 관리하고 지방 특산물인 공물과 세금을 징수하였다. 부역의 부과, 구휼 행정의 집행, 회계 장부의 작성과 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재정 규모가 늘어나는 조선 후기에는 선혜청 등의 관청을 새로 설립하여 호조 업무의 일부를 담당하게 하였다.

기로소 터

 

기로소는 국가 원로의 명부를 관리하고 그들에게 잔치를 베풀기 위해 설치한 관청이었다. 문관 중에서 나이가 70세 이상이고 2품 이상의 고위 관직을 역임한 관원이 들어갈 수 있었다.

 

노인을 우대하던 조선 시대는 기로소에 들어가는 것을 큰 명예로 여겼다. 왕도 나이가 들면 기로소에 들어갔다. 태조는 60세에, 숙종은 59세에, 영조와 고종은 각각 51세에 기로소에 들어갔다.

 

예조 터

 

예조는 국가의 의례와 학문을 담당하는 관청이었다. 의례와 음악, 제사와 잔치, 외교, 교육, 문과 시험 등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였다. 왕권을 상징하는 인신, 천문, 시간과 관련한 업무도 담당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육조에서 예조의 서열이 높아졌는데, 이것은 통치의 기반으로 학문과 예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조선 왕조의 문치주의 이념을 반영한 것이다.

삼군부 터

 

삼군부는 조선 초기에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관청이었다. 일반 정무를 관장하는 의정부의 맞은편에 청사가 있어서 군부와 정부의 분리를 상징하였다. 병조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없어졌다가 1865(고종 2)에 다시 설치되었다.

 

군비 강화에 큰 역할을 수행하다가 근대적인 군사 제도의 개편을 추진하던 1880(고종 17)에 다시 없어졌다. 육조 거리에 있던 관청 건물 중에서 삼군부 총무당과 청헌당만이 다른 곳으로 옮겨져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중추부 터

 

중추부는 군사 기밀을 관장하는 관청이었다. 조선 초기에 관직 제도의 변화에 따라 권한이 확대, 축소되는 과정을 겪다가 15세기 중반부터 고위 관원을 우대하기 위한 관청으로 자리를 잡았다.

 

현직에서 물러난 고위 관원이 국정에 참여하는 통로로 활용되기도 하는 등 관직 제도를 유연하게 운영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사헌부 터

 

사헌부는 왕의 언행이나 나라의 일에 대해 논쟁하고 비리 관원을 탄핵하는 관청이었다. 5품 이하 관원의 임명과 법률 제정에 대한 동의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금령 집행 등의 사법 기능을 담당하였다.

 

국가 기강과 관련한 큰 권한을 지녔기 때문에 사헌부 관원 사이의 기강이 매우 엄격하였다. 사간원, 홍문관과 함께 언론을 담당하는 3대 관청이었다.

 

병조 터

 

병조는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관청이었다. 무관의 선발, 군적과 병기의 권리, 군사 훈련, 왕의 호위, 궁궐 문과 도성 문 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군사 업무가 매우 많고 중요하였기 때문에 다른 육조와 달리 당상관으로 참지 1인을 더 두었다.

 

조선 후기에 훈련도감을 비롯하여 수어청, 어영청, 총융청, 금위영을 설립하여 5군 체제가 확립되면서 그 역할이 축소되기도 하였다.

 

형조 터

 

형조는 재판, 법 집행, 노비를 담당하는 관청이었다. 법률 조항에 대해 유권 해석을 내리고, 왕이 사형수의 죄를 심의할 때 실무를 담당하였다.

 

지방관이 판결하였던 송사를 수리하여 재판을 진행하는 등의 상급 법원의 역할, 형률 집행과 죄수 관리 등의 업무도 담당하였다. 노비와 관련한 송사는 상하에 별도로 장예원이라는 관청을 두어 맡게 하였다.

 

공조 터

공조는 토목, 건축 공사를 담당하는 관청이었다. 전국의 산림과 하천, 배와 수레, 기술자를 관리하고, 관청에서 사용하는 도량형을 배포하며, 각종 기계, 도구를 제작하는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소규모 공사는 산하의 선공감이 수행하였으나, 도성 수축이나 왕릉 조성 등의 대규모 공사는 임시 관청인 도감을 담당하게 하였다.

 

장예원 터

 

장예원은 조선 시대에 노비 장부를 관리하고 노비 관련 소송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조선 초기에 설치되었고 1764(영조 40) 형조에 소속되어 보민사로 바뀌었다.

 

이상으로 광화문 광장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 시대 주작대로인 육조거리와 육조거리에 있었던 각 관청과 임무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조선 시대 육조거리의 모습이 머리에 조금이나마 그려지는듯 했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가실 때 시간이 되시면 한번 둘러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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