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서울대학교 병원 ‘이름 모를 자유 전사자의 비’ 현충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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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서울대학교 병원 ‘이름 모를 자유 전사자의 비’ 현충탑

by yeonjaei 2020.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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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서울대학교 병원 이름 모를 자유 전사자의 비현충탑

 

오늘은 얼마 전 서울대학교 병원에 갔다가 발걸음이 절로 멈춰 섰던 서울대학교 병원 내에 있는 현충탑 '이름 모를 자유 전사자의 비'를 소개하겠습니다.

 

이름 모를 자유 전사자의 비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01에 있으며, 창경궁에서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 서울대학교 병원 의생명 연구원 건물 쪽으로 올라가는 길 바로 오른쪽 언덕배기에 있습니다.

 

이곳은 북한 김일성 괴뢰군들이 6·25전쟁 당시 서울대학교 병원을 공격 및 난입하여 1,000여 명에 이르는 병원을 방어하던 우리 국군 장병과 병원에 입원 중이던 부상당한 국군 장병, 환자와 보호자, 마지막까지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던 의사와 간호사 등 전원을 참혹하게 학살했던 곳으로, 1963년에 건립된 '이름 모를 자유 전사자의 비' 현충탑, 조화, 안내판, 현수막 등이 걸려 있습니다.

이름 모를 자유 전사자의 비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은 비문과 안내판에 잘 제시되어 있어 이를 소개합니다.

 

이름 모를 자유 전사자의 비전문

 

1950628

여기에 자유를 사랑하고 자유를 위해 싸운 시민이 맨 처음

울부짖은 소리 있었노라

여기 자유 서울로 들어오는 이 언덕에

붉은 군대들이 침공해 오던 날

이름도 모를 부상병 입원환자 이들을 지키던 군인 시민 투사들이

참혹히 학살되어 마지막 조국을 부른 소리 남겼노라

그들의 넋은 부를 길이 없으나 길게 빛나고 불멸의 숲속에

편히 쉬어야 하리

겨레여 다시는 이 땅에 그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게 하라

 

이름 모를 자유 전사자의 비내용

 

1950625일 새벽, 북한 괴뢰군은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수도 서울의 최후 방어선인 미아리 고개를 돌파하고 창경궁 앞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당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병원에는 거의 1천여 명에 달하는 부상 장병들이 응급실, 입원실, 수술실은 물론 병원 복도까지 가득 차 있었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병원은 남소위가 지휘하는 국군 1개의 경비소대 병력과 육군본부 병참장교 조용일 소령의 지원 하에 있었다.

 

이후 전세가 악화되어 북한 괴뢰군의 서울 함락이 목전에 있었으나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환자를 두고 떠날 수 없다며 피난도 잊은 채 오직 환자 치료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628일 새벽, 국군 경비소대가 병원 주위를 철통같이 방어하며 완강히 저항하자 북한 괴뢰군은 1개 대대 병력을 투입하였고, 국군 경비소대는 이곳 뒷산(당시 이곳은 조그만 동산이었다)에서 결사항전 했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조용일 소령과 소대장 남소위가 전사하고 선임하사인 민하사와 나머지 소대원 전원도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동산이 함락되자 북한 괴뢰군은 병원에 난입하여 입원한 국군 부상 장병들을 밖으로 끌어내어 잔혹하게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병원에 입원한 일반 환자 등 900여 명을 산채로 구덩이에 묻거나 불에 태워 죽이고, 총으로 난사하여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등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바로 이곳이 그 처참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젊은 나이에 나라를 지키고 병원을 지키다 장렬히 산화 하신 이름 모를 자유 전사들, 그리고 환자와 그 가족들의 영령 앞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빌며, 196366일 현충일을 맞이하여 '이름 모를 자유 전사비'를 건립하여 님들께 바칩니다.

1963. 6. 6 

 

6.25전쟁 배경과 남침

   

 

참고로 6.25전쟁의 발발하게 된 배경은 우리나라는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항복으로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미국과 구소련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분담하기 위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점령하게 됩니다. 이후 통일국가 형성을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결국 사회적인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남한은 유엔 절차에 따라 19488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고, 같은 해 99, 북한의 김일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포하며 한반도에 체제가 다른 2개의 정부가 탄생하였습니다.

 

이후 김일성은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소련과 중국의 도움을 받아 6.25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출처 : 전쟁기념관)

 

 북한군은 우세한 군사력으로 개전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두 달도 채 안 되어 낙동강 전선까지 남진하였습니다. 국군은 군사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총력전으로 북한군에 대항하여 싸웠으며, 유엔은 북한의 불법 남침을 응징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군사 원조안을 결의하였습니다. (출처 : 전쟁기념관)

 

맺는 말

 

서울대학교 병원에서는 매년 현충일 하루 전 참혹하게 전사한 영령들에 대한 참배를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당시 참으로 가혹했던 상황들이 머리에 떠올라 절로 머리를 숙여 참배를 올렸습니다.

 

앞으로 이곳에서와 같은 끔찍하고 가슴 아픈 일들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 안보에는 조금도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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