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촌 세종마을 투어 - 세종대왕 나신 곳, 쌍홍문 터, 신익희 선생 집, 정철 정선 생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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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촌 세종마을 투어 - 세종대왕 나신 곳, 쌍홍문 터, 신익희 선생 집, 정철 정선 생가터

by yeonjaei 2020. 5. 16.

서울 서촌 세종마을 투어 - 세종대왕 나신 곳, 쌍홍문 터, 신익희 선생 집, 정철 정선 생가터

 

 

얼마 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촌 세종마을을 투어하였다. 서울 종로구 서촌 세종마을은 돌아 볼 곳이 참 많았는데, 그중 통의동 백송 터와 추사 김정희 선생 집터, 보안여관과 통의동 한옥마을은 지난번 1차로 포스팅을 하였고, 나머지 부분을 오늘 포스팅합니다.

서촌 세종마을 투어 순서는 세종대왕 나신 곳과 쌍홍문 터, 해공 신익희 선생 집, 그리고 송강 정철 생가터, 겸재 정선 생가터 순으로 돌아보았다. 

 

세종대왕 나신 곳

 

세종대왕이 나신 곳에는 현재 도롯가에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세종대왕은 태조 61397515일 한양 북부 준수방(지금의 통인동 옥인동) 잠저에서 태종의 셋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셨다. 

잠저란 국왕의 장자로 태어나 왕세자가 된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이나 사정으로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말한다. 

세종대왕은 1418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같은 해 810일 조선 제4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재위 32년 동안 정치, 사회, 경제 등에서 쌓아 올린 눈부신 업적을 바탕으로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중에서도 한글의 창제는 세종대왕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손꼽힌다.

145021754세로 승하하셨고, 소헌왕후와 합창한 세종대왕 영릉은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에 있다. 

그리고 서촌 세종마을은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청운 효자동과 사직동 일부 지역을 지칭하는데, 세종대왕이 이 일대에서 태어나셨기에 이 마을 주민들이 2010년부터 세종마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또 경복궁역에서 자하문터널 1,910m 구간을 한글로라는 명예도로명을 지정하였다. 한글로는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을 지나는 거리로, 서울 종로구는 세종대왕의 업적과 한글의 우수성을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이 구간을 도로명 주소위원회 심의를 거쳐 명예도로명 한글로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쌍홍문 터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는 쌍홍문 터라는 표지석이 있다. 이곳은 나라에서 충신, 열녀, 효자를 기려 하사했던 상징적인 붉은 문인 홍문이 있었던 자리이다. 쌍홍문이란 그 홍문이 두 개가 있음을 말한다. 

쌍홍문은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가 조원(1544~1595)의 두 아들 희정과 희철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내린 한 쌍의 정려문이다.

조원의 아들 희정과 희철 형제는 임진왜란 때 모친을 구하기 위해 모친을 모시고 강화도에 도착했을 때 왜적이 들이닥치자 맨손으로 제지하던 큰아들 희정이 칼에 맞아 숨졌다. 곧이어 작은아들 희철이 달려들어 왜적을 제압하고 모친을 죽음 직전에 구하여 산속으로 피신시키고 자신은 굶어가며 초근목피로 봉양을 하였으나, 왜적과 싸우다 생긴 상처 부위의 악화와 굶주림으로 죽게 되었다 

동국여지비고에서 이 두 사람으로 인해 마을을 쌍효자 거리로 부른다라고 하였는데, 이들로 인하여 종로구에서 효자동이란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해공 신익희 선생 집

 

 

해공 신익희 선생 집은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있다. 이 집은 해공 신익희 선생(1894~1956)이 살던 곳이다국회의장에서 물러난 19548월부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거유세 도중에 숨진 19565월까지 약 19개월 동안 이 집에서 살았다. 

신익희 선생은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하였고, 해방 후에는 반탁위원회를 결성하여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선도하였다. 1947년에는 입법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을 제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1950년에는 제2대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송강 정철 생가터 및 시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서울 청운초등학교 정문 입구에는 정철 선생 나신 곳이라는 표지석이 있으며, 송강 정철(1536~1593)은 한성부 북부 순화방 지금의 청운동 123에서 태어났다조선 전기 문신 겸 시인. 호는 송강. 여러 벼슬을 역임하다가 동인의 탄핵을 받아 사직하고 4년간 은거 생활을 하였다.

 

송강 정철의 작품으로는 관동별곡을 비롯하여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등의 가사와 시조 107수가 전해지며, 문집 송강집, 송강가사 등이 있다. 당대 가사 문학의 대가로서 시조의 윤선도와 함께 한국 시가사상 쌍벽으로 일컬어진다. 

 

겸재 정선 생가터

 

겸재 정선 생가 터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등학교 교정 내에 있다. 이곳 일대는 조선 시대의 지명이 유란동 난곡이었는데 겸재 정선(1676~1759)이 태어난 곳이다. 

정선은 이곳에서 53세까지 살다가 이후 인왕산 아래 인곡정사로 이사해 84세까지 살았다. 어렸을 때 집 근처에 살았던 농암 김창협, 삼연 김창흡, 노가재 김창업 문하에서 시, , 화를 배웠다.겸재는 조선 후기 제일의 화가로 인왕산 주변의 명승지를 그린 장동팔경첩과 국보 제216호로 지정된 인왕제색도 등 불후의 명작을 남겨 화성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겸재 정선은 20세에 김창집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되어 현감에 이르기도 하였다. 여행을 즐겨 금강산 등의 전국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정선의 그림에는 다채로운 숨은 그림들이 많았다고 한다 

세종마을은 창의궁, 수성궁 등 왕족들의 터전이 산재해 있는가 하면 겸재 정선과 송강 정철이 태어나 불후의 명작을 남겼고, 추사 김정희, 청전 이상범, 이상, 윤동주, 박노수 등이 거주하면서 문화예술의 혼을 이어갔다. 600여 채의 한옥과 옛 골목들이 현대와 공존하는 서울의 명소이다. 

시간이 될 때 가족들과 함께 서촌 세종마을 나들이를 하여도 의미 있으면서 보람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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